러시아 외무장관의 발언으로 드러난 새로운 세계 질서
2025년 4월 24일, 러시아 외무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는 러시아 공영 TV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외교 정책을 강력히 비판하며, 미국이 국제적인 합의와 규범을 무시하고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세계 질서를 '힘이 곧 진리'인 시대로 되돌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발언은 단순한 외교적 수사를 넘어 러시아가 바라보는 현 국제 질서의 근본적 문제점을 지적한 것으로, 급변하는 세계 정치의 권력 구도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라브로프 장관은 현재 세계가 다시 강대국 중심의 '힘의 논리'로 회귀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 외교 정책의 직접적인 결과물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국제법과 다자 합의가 점차 무시되고, 강대국 간 대립 구도가 심화되는 현상을 강하게 비판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미국이 국제법을 따르지 않고 있으며, 자국의 복지를 위해 쿠데타, 납치, 자원 보유국 지도자 암살 등 어떤 수단도 불사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특히 미국 관리들이 이러한 행동이 석유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숨기지 않는다고 덧붙이며, 에너지 자원을 둘러싼 미국의 노골적인 개입을 지적했다.
구체적 사례로 라브로프는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에 대한 납치 시도와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에 대한 미국-이스라엘 합동 공습 시도를 들었다. 이러한 사건들은 미국이 라틴 아메리카와 중동에서 에너지 시장을 지배하려는 교리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라고 그는 주장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미국의 이러한 접근 방식이 국제 관계에 대한 정상적 접근이 아니라 '식민 시대'로의 회귀 시도라고 규정했다.
광고
그는 유럽 정책 또한 '오만과 타인에 대한 경멸'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서방 전체의 외교 행태를 비판했다. 이는 러시아가 현재 서방과의 관계를 단순한 정책 차이가 아닌 근본적인 세계관의 충돌로 인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라브로프의 발언은 냉전 종식 이후 구축된 서방 중심의 국제 질서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러시아의 인식을 명확히 드러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서도 라브로프 장관은 미국의 이중적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 해결 노력에서 '엄청난 경제적 기회'를 내세우면서도 동시에 러시아를 모든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서 밀어내려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미국이 평화 중재자를 자처하면서도 실제로는 러시아 약화라는 전략적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는 러시아 측의 해석이다.
라브로프는 또한 서방이 러시아를 상대로 한 전쟁을 위해 우크라이나를 준비시키기 위한 캠페인을 오래전부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2021년 11월과 12월에 러시아가 제안한 러시아-NATO 간 관계 정상화 및 안보 불가분 원칙에 기반한 합의가 서방에 의해 거부되었음을 상세히 설명했다.
당시 러시아는 NATO가 더 이상 확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법적 구속력 있는 문서를 제안했다. 그러나 서방은 NATO 회원국만이 안전 보장을 받을 수 있다고 답하며 러시아의 제안을 일축했다고 라브로프는 밝혔다. 이는 우크라이나 사태의 근본 원인이 러시아의 일방적 침공이 아니라 서방의 안보 우려 무시에 있다는 러시아의 오랜 주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광고
라브로프는 이 제안 거부가 이후 사태 악화의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고 해석했다. 라브로프의 2025년 4월 인터뷰는 급변하는 세계 질서 속에서 러시아의 국제 정세 인식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그의 발언은 다극화된 세계에서 강대국 간의 충돌과 대립이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을 뒷받침한다.
특히 미국과 러시아 간의 근본적인 세계관 차이는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라브로프가 강조한 '힘의 논리' 회귀는 냉전 종식 후 30년 이상 유지되어 온 국제 질서의 근본적 재편을 의미한다. 국제법과 다자주의에 기반한 전후 국제 질서는 강대국 간 합의와 상호 존중을 전제로 했다.
그러나 라브로프가 지적한 것처럼 일방주의와 힘의 논리가 우세해진다면, 이는 중소 국가들에게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제 사회의 규범과 법이 강대국의 이익에 따라 선택적으로 적용된다면, 예측 가능한 국제 질서 유지는 어려워진다. 라브로프의 발언은 이러한 우려가 단순한 이론적 가능성이 아니라 현실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강대국 간 갈등 심화, 국제 규범의 흔들림
에너지 자원을 둘러싼 갈등은 국제 정치의 오랜 핵심 요소였다. 라브로프가 언급한 베네수엘라와 이란 사례는 에너지 자원이 풍부한 국가들이 강대국의 개입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이 중동과 라틴 아메리카에서 에너지 시장 지배를 추구한다는 러시아의 주장은, 에너지 안보가 단순한 경제 문제를 넘어 국가 주권과 직결된 문제임을 강조한다. 이는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라브로프가 제기한 '식민 시대 회귀' 주장은 서방의 외교 정책에 대한 근본적 비판이다.
광고
식민주의는 강대국이 약소국의 주권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자원과 시장을 지배하는 체제였다. 라브로프는 현재 미국의 행태가 이와 유사하다고 보고 있으며, 이는 비서방 국가들 사이에서도 일정한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주장이다.
특히 과거 식민 지배를 경험한 국가들은 이러한 프레임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유럽에 대한 라브로프의 비판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유럽 정책이 '오만과 타인에 대한 경멸'에 기반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러시아가 유럽을 미국의 독자적 행위자가 아닌 종속적 파트너로 보고 있음을 시사한다. 냉전 시기 유럽은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독자적 역할을 모색했지만, 현재는 대러 제재에서 미국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라브로프의 발언은 이러한 유럽의 정책 선택이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는 불만을 표현한 것이다. 2021년 말 러시아의 NATO 확장 중단 제안과 서방의 거부는 우크라이나 사태의 중요한 맥락이다. 러시아는 NATO의 동진이 자국 안보에 직접적 위협이 된다고 오랫동안 주장해왔다.
안보 불가분 원칙은 한 국가의 안보가 다른 국가의 안보 희생 위에 구축될 수 없다는 개념이다. 러시아는 이 원칙에 기반해 NATO 확장 중단을 요구했지만, 서방은 NATO 회원 결정은 주권국의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 근본적 입장 차이는 결국 무력 충돌로 이어졌다. 라브로프의 인터뷰는 러시아가 현재의 대립을 일시적 긴장이 아닌 장기적 체제 경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광고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러시아는 자국의 이익을 군사력과 에너지 자원을 통해 관철하려 할 것이다. 이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진영과 러시아·중국을 중심으로 한 비서방 진영 간의 구조적 대립이 지속될 것임을 의미한다. 다극화된 세계 질서에서 이러한 진영 간 경쟁은 다양한 지역과 이슈 영역에서 나타날 것이다.
에너지 시장을 둘러싼 강대국 경쟁은 특히 주목할 부분이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 규모의 천연가스 및 석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외교적 지렛대로 활용해왔다. 미국이 러시아를 에너지 시장에서 밀어내려 한다는 라브로프의 주장은, 에너지 안보가 21세기 지정학의 핵심 요소임을 재확인한다.
유럽의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 감축 노력, 미국의 LNG 수출 확대, 중동 산유국들의 입장 변화 등이 모두 이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한국 외교에 필요한 전략적 대응 방향
국제법의 선택적 적용 문제도 중요한 쟁점이다. 라브로프는 미국이 국제법을 자국 이익에 따라 선택적으로 적용한다고 비판했다.
이는 코소보 독립 승인, 이라크 침공, 리비아 개입 등 과거 사례들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국제법의 권위는 모든 국가가 동등하게 그 적용을 받을 때 유지된다. 강대국이 법의 적용에서 예외가 된다면, 국제법 체계 전체의 정당성이 훼손될 수 있다.
다자주의의 약화도 우려스러운 추세다. 유엔을 중심으로 한 전후 국제 질서는 다자 협력과 대화를 통한 분쟁 해결을 원칙으로 했다. 그러나 강대국 간 대립이 심화되면서 유엔 안보리는 자주 기능 마비에 빠지고, 국제 협력 메커니즘들이 약화되고 있다.
광고
라브로프의 발언은 이러한 추세가 의도적인 미국 정책의 결과라는 러시아의 해석을 담고 있다. 다자주의 약화는 글로벌 이슈 해결 능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중소 국가들의 입장에서 강대국 간 대립 심화는 딜레마를 초래한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중소 국가들은 강대국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압력에 직면한다. 그러나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것은 다른 쪽과의 관계 악화를 의미한다.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려는 시도도 양측으로부터 압력을 받을 수 있다. 이는 냉전 시기 비동맹 운동이 직면했던 문제의 재현이다.
라브로프 장관의 2025년 4월 발언은 1년이 지난 현재(2026년 4월)에도 여전히 유효한 분석 틀을 제공한다. 그가 지적한 '힘의 논리' 회귀, 국제법 약화, 강대국 대립 심화는 지난 1년간 더욱 뚜렷해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미중 경쟁의 심화, 중동의 불안정 지속 등이 이를 증명한다. 라브로프의 발언은 단순한 러시아의 입장 표명을 넘어, 현재 국제 질서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국제 사회는 이러한 도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강대국 간 대화와 신뢰 구축이 필수적이지만, 현재로서는 그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국제법과 다자주의의 복원을 위한 노력도 필요하지만, 강대국들의 정치적 의지 없이는 실현되기 어렵다. 중소 국가들의 연대와 목소리 강화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국제 질서에 대한 강대국 간 합의가 필요하지만, 그 과정은 길고 험난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