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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념특집연재] 21화 "느림을 사랑한 아티스트" 안나송 작가, 소란한 세상을 그림으로 유영하다

헤라스아트 갤러리에 펼쳐지는 ‘Sweet Forest’, 4월 7일 개인전《느리게 빛나는 것들》

속도보다 존재를 받아들이는 태도… 여백의 미학으로 찾은 삶의 쉼터

‘나무 늘보’와 함께 머무는 시간을 택하다, '나다운 속도’로 오래 빛나는 생명력


눈에 띄는 성과가 보이지 않아 조바심 내던 시간을 지나, 멈춘 듯 머무는 순간들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캔버스 위에 담아내는 작가가 있다. The Imaginary Pocus가 [창간특집기획연재] 아티스트 아카이브 시리즈로 만난 스물한 번째 주인공은 ‘느림을 사랑한 아티스트’ 시각예술가 안나송 작가이다. 

 

흔적없이 사라져가는 찰나의 빛을 붙잡아 기억처럼 기록한 그녀의 스토리는, 일상의 길고 무거웠던 시간들을 자신만의 속도로 그려낸 그림처럼 시간이 갈수록 삶의 색을 더하고 있다.

 

'새벽 두시' (Acrylic on canvas, 91.0 × 72.7 cm, 2026) 나는 어떤 속도로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깊은 성찰을 주는 작품 = 작가 제공

 

 

속도가 아닌 존재를 받아들이는 태도, '느림'의 가치
안나송 작가를 관통하는 핵심 철학은 단연 ‘느림’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효율과 속도를 요구하지만, 작가에게 느림은 단순히 물리적인 속도가 늦은 상태나 멈춤을 의미하지 않는다. "저에게 느림은 단순한 속도의 개념이 아니라, 머무르고,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삶의 태도에 가깝습니다"라고 작가는 짚어 말한다. 


당장 가시적인 성과가 드러나지 않는 길고 막막했던 시간을 지나오며, 그녀는 결과로 증명되지 않더라도 그 안에서 쌓여가는 시간 자체를 온전한 삶의 일부로 인정하게 되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삶은 분명히 이어지고 있다는 믿음과, 보이지 않는 시간을 묵묵히 견뎌내는 존재들에 대한 존중이 그녀의 예술 세계를 지탱하는 힘이다.


나다운 속도로 빚어내는 조용한 교감의 세계
작가를 상징하는 확고한 정체성은 "나다운 속도로 살기(느리게 살기)"이다. 과거에는 눈에 보이는 결과나 도달해야 할 속도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불안해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과정과 머무는 시간에 훨씬 더 큰 가치를 둔다. 


매일 아이들을 등하원 시키는 길에 공원을 거닐며 새와 피어나는 꽃을 관찰하고, 해 질 무렵에는 동화 속 어린 왕자처럼 노을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흘러가는 빛을 붙잡는 소소한 일상이 그녀의 세계관을 이룬다. 빠르게 지나치던 계절의 변화나 아주 미세한 감정의 흔들림조차 선명하게 느끼게 된 그녀의 맑은 시선은 캔버스에 그대로 옮겨진다. 


그녀는 "예술성은 얼마나 새로운 방식인가, 얼마나 뛰어난 기술인가보다 얼마나 자연스럽게 사람과 이어질 수 있는가에 더 가깝습니다"라고 강조한다. 누군가와 만나서 잠시 쉬어갈 수 있게 교감하는 것을 진정한 예술성으로 여기는 세계관은, 현대인들의 각박한 시간을 다른 차원으로 풀어낸다.


잠자는 나무늘보와 동물들이 건네는 쉼표, 그리고 여백
안나송 작가의 작품 세계는 느림과 고요함 속에서 피어나는 지속적인 생명력과 가능성을 시각화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작가는 주로 잠자는 나무늘보를 비롯해 토끼, 곰 등 다양한 동물의 형태를 빌려 서사를 풀어낸다. 말 없는 동물들은 굳이 소리 내어 주장하지 않아도 그 존재만으로 감정과 상태를 전달하는 훌륭한 매개체가 된다. 


특히 정지된 것처럼 보이지만 멈추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나아가는 나무늘보는 그녀의 작품 세계를 온전히 대변하는 상징이다. 작가는 강렬한 서사나 특정한 의미를 관람객에게 억지로 주입하지 않는다. 


"조용히 머물고 있는 장면을 통해 보는 이가 스스로 감정을 발견할 수 있는 여백을 중요하게 여깁니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투명한 정서가 담긴 캔버스는 관객이 각자의 속도로 감정을 마주하고 쉴 수 있는 넉넉한 쉼터가 된다.

 

'호두나무의 꿈 02' (Acrylic on canvas, 33 × 24 cm, 2025) 안나송 작가가 추구하는 고요함의 정수를 완벽하게 담아낸 작품 = 작가 제공


치열한 사유의 시간, 긴 호흡으로 쌓아 올리는 기다림
그녀의 작업 방식 역시 추구하는 느림의 철학과 완벽하게 맞닿아 있다. 과거 애니메이션 '마리이야기' 스튜디오에서 일하며 스태프들이 보여준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끝까지 집중하는 진지한 인내심은 오늘날 안나송 작가의 작업 태도에 깊은 족적을 남겼다. 


그녀는 전체적인 화면의 리듬을 빠르게 잡을 때는 건조가 빠른 아크릴 물감을 사용하고, 오랜 시간 층을 쌓아 깊이 있는 질감을 더할 때는 마르는 데 시간이 걸리는 유화를 선택적으로 활용한다. 실제 수묵화 기법을 쓰지는 않지만, 그녀의 화면 위에는 마치 수묵 특유의 담백한 호흡이 스며 있는 듯하다. 붓을 멈추고 화면을 바라보는 찰나, 물감이 마르기를 기다리는 시간조차 작품과 대화하는 과정의 일부다. 


놀랍게도 그녀에게 가장 치열한 작업의 순간은 붓을 쥐고 있는 육체적 노동의 시간이 아니다. 책을 읽고 이미지를 찾으며 무엇을 그릴지, 그 장면이 지금의 자신과 진실로 맞닿아 있는지 묻고 사유하는 준비 과정에 가장 오랜 시간을 쏟는다. 막히는 부분이 생기면 억지로 풀지 않고 한 달 가까이 그림을 곁에 둔 채 실마리가 자연스럽게 풀리기를 묵묵히 기다리는 방식을 고집한다.


13년의 다져진 시간, 예술을 향한 끝없는 갈증이 피워낸 꽃
미술 전공자는 아니지만 늘 가슴 한편에 예술가를 향한 짙은 갈증을 품고 있던 그녀는, 비전공자로서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홍익대학교 교육학과 졸업 후 서울애니메이션 센터 만화전문반과 SI그림책 학교를 수료하며 역량을 다졌다. 이후 애니메이션 '마리이야기' 스튜디오에서 애니메이터로 활동하다 2007년 한국 안데르센상 출판미술 부문 우수상을 수상하고 2009년 그림책 "다다의 의자"를 출간하며 역량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후 약 13년이라는 길고 험난한 공백기를 마주해야만 했다. 남편의 일로 일본에 머물던 중 발생한 대지진과 원전 사고의 극심한 공포 속에서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고, 이후 난임 치료라는 힘겨운 터널을 거쳐 첫째 아이를 품에 안았다. 


육아의 틈을 타 몇 박스 분량의 그림을 치열하게 그렸지만 출판은 번번이 무산되었고, 둘째 출산 후 시작한 미술 홈스쿨마저 코로나19 사태로 문을 닫아야 했다. 하지만 언제나 스스로 부족하다는 느낌, 채워지지 않은 예술적 갈증이 도리어 그녀가 끝까지 붓을 놓지 않게 만드는 강력한 원동력이 되었다. 결국 2022년 5월, 운영하던 교습소를 유지하기 어려워진 현실적인 이유를 계기로 NFT 작가로 활동을 재개하며 활발한 교류 속에서 다시 비상했다. 


그녀는 "돌이켜보면 이 시간들은 단절된 공백이라기보다,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었던 시간들이었습니다"라고 담담히 회상한다. 눈에 띄는 성과는 다소 늦었을지언정 결코 허투루 쓰이지 않은 그 축적된 시간들 덕분에, 현재 그녀는 파인아트 영역까지 무대를 넓혀 위플갤러리 우수상, K-Artist Prize 특선, 국제현대미술대전 입선 등 눈부신 성과를 거두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NO WAR' (Acrylic on canvas, 116.7 × 91.0 cm, 2025) 티셔츠라는 매개체를 통해 슬로건을 표현한 작품 = 작가 제공


성찰과 평화, 그리고 공존을 묻는 세 가지 이정표
안나송 작가의 예술적 정체성을 가장 선명하게 투영하는 세 점의 대표작은 그녀가 걸어온 깊은 사유의 여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첫째, '새벽 두시' (Acrylic on canvas, 91.0 × 72.7 cm, 2026)이다. 작가가 자신의 작업이 가진 일관성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며 치열하게 고민하던 시기에 탄생했다. 같은 시간 속에 누군가는 깨어 활동하고 누군가는 잠들어 있는 동물의 모습을 담아내며 “나는 어떤 속도로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깊은 성찰을 관람객에게 던진다. 


둘째, '호두나무의 꿈 02' (Acrylic on canvas, 33 × 24 cm, 2025)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추구하는 고요함의 정수를 완벽하게 담아냈다. 작업하는 내내 유지했던 차분한 감각이 화면 구석구석 고스란히 스며 있으며,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화가 이어지기를 바라는 그녀의 정서적 중심점 같은 작품이다. 


셋째, 'NO WAR' (Acrylic on canvas, 116.7 × 91.0 cm, 2025)이다. 티셔츠라는 매개체를 통해 슬로건을 표현하는 특별한 전시를 위해 그려졌다. 단순히 개인적인 관계의 갈등뿐만 아니라, 계층과 성별로 나뉘어 싸우는 현대 사회의 팽배한 갈등과 분열, 한국의 기나긴 휴전 상황,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에 대한 짙은 고뇌에서 출발했다. 작가는 이 그림을 통해 갈등이 팽배한 현실 속에서 평화와 공존에 대한 간절한 바람을 묵묵하지만 호소력 있게 드러냈다.


조용한 숲에 온 듯한 평안, 개인전 《느리게 빛나는 것들》
다가오는 4월 7일부터 19일까지, 서울 서초구 반포메이플자이 헤라스아트 갤러리에서 안나송 작가의 개인전 "느리게 빛나는 것들"이 열린다. 한 커뮤니티의 전시 작가 모집 공고를 통해 갤러리 운영자와 맺은 우연하고도 값진 인연으로 성사된 이번 전시는, 일상의 속도를 늦췄을 때 비로소 시야에 들어오는 작고 조용한 순간들을 섬세하게 조명한다. 


작가는 관람객들이 빠르고 지치는 세상 속에서 마치 조용한 숲에 온 것 같은 안식을 얻어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전시의 중심을 잡는 메인 대표작은 "Sweet Forest"이다. 단맛이 주는 즉각적인 쾌락과 가족이 주는 따뜻한 안온함의 묘한 공통점을 시각적으로 결합했다. 


흥미롭게도 처음엔 그저 곰을 스케치했을 뿐인데, 완성하고 보니 작품 속 곰들의 표정이 작가의 실제 남편과 아들, 딸을 꼭 빼닮아 있어 작가 본인조차 놀랐을 만큼 깊은 애정이 묻어난다. 한 달 가까운 긴 고민 끝에 가족 여행지였던 인제 자작나무 숲의 노랗게 물든 초가을 풍경을 배경으로 삼았으며, 낯설고 신비로운 그 숲의 공기가 관람객의 발걸음을 가장 오래 머물게 할 전시의 백미로 기대된다.

 

헤라스아트 갤러리에서 안나송 작가의 개인전 "느리게 빛나는 것들" 포스터 = 갤러리 제공


기술을 넘어 전혀 다른 감정을 엮어내는 창조의 심장, 상상력
그녀는 예술의 중심을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 바로 인간 고유의 상상력이라고 굳게 믿는다. 현실의 대상을 관찰하고 참고하더라도, 전혀 다른 이질적인 장면과 감정들을 섬세하게 하나로 엮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탄생시키는 것은 결국 상상의 힘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상상력은 단순한 보조 수단이 아니라, 기술의 발전을 뛰어넘어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결정하는 예술 창조의 굳건한 심장과도 같다.


평면을 넘어 빛과 소리가 흐르는 느린 시간의 공간으로
안나송 작가의 시선은 이제 평면의 캔버스를 넘어 다채로운 감각이 살아 숨 쉬는 입체적인 공간으로 향하고 있다. 그녀는 향후 느림이라는 본질적인 감각을 평면 안에만 가두지 않고 미디어아트 등으로 한 차원 더 확장할 당찬 계획을 구상 중이다. 


궁극적으로는 빛과 소리, 색이 어우러지고 천천히 흐르는 시간을 관람자가 직접 피부로 체험하며 머물고 쉴 수 있는 ‘느린 시간의 공간’을 전시로 구현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조급하게 눈앞의 결과를 서두르기보다는 언제나 그래왔듯 자신만의 호흡과 속도를 유지하며, 앞으로 계속 탐색해 나가야 할 시간의 방식을 천천히 다져나갈 예정이다.


느림은 멈춤이 아니라 나를 잃지 않는 방식
삶이 온전한 예술로 피어나는 눈부신 순간은 거창하거나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한 평범하고 고요한 시간 속에서 천천히 만들어진다고 작가는 조언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길이 맞는지 확신하지 못해 방황하는 이들에게 그녀는 진심 어린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건넨다. 


"너무 빠르게 답을 찾으려고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무언가를 이루지 못하는 시간처럼 보여도, 각자의 속도로 머무는 시간 속에서 분명히 자신만의 감각은 자라나고 있고 그것이 결국 자신의 예술이 될 것입니다. 조금 느리더라도 지금의 시간을 그대로 지나가 보셨으면 합니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팍팍한 현실 속에서, 안나송 작가가 본지 독자들을 향해 남긴 마지막 한 마디는, 
잠시 고개를 들고 자신이 사는 세상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도록 다정한 듯 힘 있게 이끈다.

 

"느림은 멈춤이 아니라, 나를 잃지 않는 방식입니다. 느리게 가도, 당신은 이미 충분히 빛나고 있습니다".

 

‘느림을 사랑한 아티스트’ 시각예술가 안나송 작가 = 작가 제공


[아티스트 소개: 안나송] 
홍익대학교 교육학과 졸업 후 서울애니메이션 센터와 SI그림책 학교를 수료하고, 애니메이션 '마리이야기' 애니메이터 및 그림책 작가로 활동했다. 약 13년의 긴 공백기를 거쳐 2022년 NFT 작가로 활동을 재개하며 파인아트 영역으로 작품 세계를 확장했다. 잠자는 나무늘보, 거북이, 곰 등의 동물을 모티브로 삼아 고요함 속의 생명력과 넉넉한 여백의 미학을 캔버스에 담아내고 있다. 2007년 한국 안데르센상 우수상을 비롯해 2023년 위플갤러리 공모전 우수상, K-Artist Prize 특선, 2024년 국제쿤스 아트프라이즈 특별상 등 다수의 공모전에서 수상하며 역량을 인정받았다. '느림은 멈춤이 아니라 나를 잃지 않는 방식'이라는 철학 아래, 향후 빛과 소리가 어우러지는 전시를 통해 관람객이 직접 머물고 쉴 수 있는 '느린 시간의 공간'을 구현하며 예술을 통한 쉼의 가치를 실천해 나가고 있다.

[The Pocus Archive: 아티스트 아카이브 – OO을 사랑한 아티스트]
AI가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가치는 결국 인간의 마음과 상상의 힘에 있다. 본지 The Imaginary Pocus는 창간을 맞이하여 기술만으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감성과 상상 세계를 지켜가는 예술가들을 조명하는 연재 시리즈 [OO을 사랑한 아티스트]를 선보인다. The Pocus Archive는 앞으로도 자신만의 가치를 사랑하며 자신의 원하는 미래를 실현하는 아티스트들을 엄선하여 기록하고 있다.

 


 

작성 2026.04.06 05:33 수정 2026.04.06 05:57

RSS피드 기사제공처 : The Imaginary Pocus / 등록기자: 이은수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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