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집’ 천사들을 축복하소서
지난 금요일(10일) 돌봄을 받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섬기는 박래성 목사님과 조가빈 사모님을 뵐 수 있었습니다. 두 분은 이름도 없이 빛도 아픔과 상처받은 이들을 품고 계셨습니다. 학대를 피해 집을 나오거나 이혼 가정으로 인해 돌봄을 받지 못하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처로 무너진 이들을 주님의 마음으로 섬기는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목사님 부부는 오래된 건물 3층에 이들이 언제든지 식사하며 쉴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편히 잠을 잘 수 있도록 빌라를 마련하여 안식처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들이 생활하는 빌라의 이름은 ‘우리 집’입니다.
목사님 부부와 대화를 나눈 후 도움을 드리고 힘이 되어 드리고 싶었으나 여건이 허락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현실적인 도움을 드릴 수 없기에 상처받은 청(소)년들이 ‘우리집’에 머무는 동안 내적 치유와 평안히 임하길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귀가하고 돌아올 때 환히 웃으면서 인사를 하는 그들을 보고 감동이 되면서도 마음이 짠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생각이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따듯한 말 한마디와 관심을 받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왜 그리 모질게 아픔과 상처를 주었을까? ’ 그래도 감사한 것은 이들이 박 목사님 부부를 만나 따듯한 돌봄을 받고 있다는 것에 조금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이들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섬기는 귀한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분들의 사랑과 헌신으로 무너진 인생들이 살아갈 이유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 인생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고통을 주고 상처를 주는 인생을 살아간다면 이처럼 어리석은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가시와 같은 인생이 아닌 장미꽃과 같은 인생이 되어야 하는데 왜 우리는 그런 삶을 살지 못할까요? 버리는 인생이 아니라 품는 인생, 상처를 주는 인생이 아닌 위로하는 인생, 고통을 주는 인생이 아니라 품어주고 안아주는 인생이 귀한 것임을 알면서도 그런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해 봅니다. “혼자의 힘으로 일어설 수 없는 그들을 하나님께서 따뜻하게 어루만지시고, 살아갈 힘과 지혜를 주시며, 회복되어 이후에 누군가에 희망이 되어 주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