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명한 사립학교 이튼 칼리지(Eton College)는 수도 런던에서 서쪽으로 약 35km 떨어진 버크셔주(Berkshire)에 위치해 있다. 만 13~18세 남학생을 교육하는 중등 교육기관으로서 1440년 헨리 6세가 가난한 학생 및 소년 성가대원들을 가르치기 위해 설립했다. 이렇게 자선(慈善)을 바탕으로 하여 설립된 학교가 약 580년 후 총리 19명을 배출한 귀족학교가 됐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irony)하다.
영국에서 이튼(Eton)이라는 브랜드는 단순한 명문학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역사를 빛냈던 여러 인물들을 배출했을 뿐 아니라 뛰어난 지성과 남다른 애국심으로 근대 영국의 기초를 닦았다는 자부심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이튼 학생”을 뜻하는 단어인 “이토니언(Etonian)”은 옥스퍼드 사전에도 등재되어 있다. 이 학교에는 제1, 2차 세계대전에서 숨진 1,900여 명의 이토니언을 기리는 벽이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우선시하는 학풍에 따라 당시 학생들은 망설임 없이 전쟁에 뛰어들었다. 엉덩이 뒤를 길게 덮는 서양의 전통 예복인 연미복을 교복으로 입을 만큼 전통을 중시한다.
이튼 칼리지의 교훈은 “남의 약점을 이용하지 말라. 비굴하지 말라. 공적인 일에 용기 있게 나서라”이다. 마지막 교훈이 상징하듯 수많은 정치인이 이튼(Eton)에서 소년 시절을 보냈다. 영국의 제10대 총리로서 아일랜드를 합병하고, 인도와 북아메리카 등지에서 식민지를 넓혀 대영제국의 기초를 닦음으로써 위대한 평민(The Great Commoner)이라는 별칭을 가졌던 윌리엄 피트(William Pitt), 빅토리아 여왕 시대 때 제41대, 제43대, 제45대. 제47대 총리를 네 번이나 지내며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기틀을 다졌던 윌리엄 글래드스톤(William Ewart Gladstone), 제50대 총리를 지내면서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정착을 허용하는 “밸푸어 선언”을 했던 아서 밸푸어(Arthur James Balfour), 등이 모두 이튼 칼리지의 졸업생이었다.
문화예술계에도 이튼 파워(Eton Power)는 대단하다. 문학계에서는 소설 『동물농장(Animal Farm)』과 『1984』을 썼던 작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 『멋진 신세계』를 집필한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 영화 007시리즈의 원작자 이언 플레밍(Ian Fleming) 등이 모두 이튼 칼리지 출신이다. 또 영화계에서는 “어벤져스(Avengers)” 시리즈의 “로키(Loki)”로 유명한 톰 히들스턴(Tom Hiddleston), “사랑에 대한 모든 것”으로 2014년 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에디 레드메인(Eddie Redmayne), 미국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Band Of Brothers)”, “홈랜드(Homeland)”의 주인공 데이미언 루이스(Damian Lewis), “닥터 하우스”의 주인공 휴 로리(Hugh Laurie), “어페어(Affair)”의 주인공 도미닉 웨스트(Dominic West) 등, 쟁쟁한 배우들도 이튼 칼리지의 동문이다.
또 고전 경제학의 대부 케인스(John Maynard Keynes), 『십자군의 역사』를 저술한 역사학자 스티븐 런시먼 경(Sir James Cochran Stevenson Runciman), “일정 온도에서 기체의 압력과 부피는 반비례한다”는 “보일의 법칙”을 만든 로버트 보일(Robert Boyle), “음의 이론(Theory of Sound)”으로 유명한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존 레일리(John William Strutt Rayleigh), 등도 이튼 칼리지 출신이다.
영국의 왕실 남성들도 대부분 이튼과 인연을 맺었다. 설립자가 국왕인데다 학교 인근에 윈저성(Windsor Castle)이 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손자인 윌리엄(William Arthur Philip Louis) 왕세손과 동생 해리 왕자(Prince Harry), 여왕의 사촌 동생 글로스터 공작(Duke of Gloucester)과 켄트 공작(Duke of Kent), 두 공작의 아들들도 모두 이튼 칼리지를 졸업했다. 다른 나라의 왕실 인사도 많다. 태국 최초의 입헌 군주 쁘라차티뽁 라마 7세(Rama VII),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3세(Léopold III)도 이튼 칼리지를 졸업했다고 한다.
1760년부터 1820년까지 무려 60년간 집권한 조지 3세는 윈저성(Windsor Castle)에서 머물 때 종종 이튼 칼리지를 찾아가 학생들과 환담을 즐겼는데 그런 인연을 기리기 위해 이튼 칼리지는 지금도 조지 3세의 생일인 매년 6월 4일에 그의 탄생을 축하하는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고 한다. 이튼 칼리지(Eton College)가 밝힌 2019~2020년 기준 학기당 학비는 14,167파운드(약 2,092만원)이다. 이튼 칼리지의 1년이 3학기임을 감안할 때 연 학비만 약 6,300만원 정도가 된다. 그래도 입학하려는 학생들이 줄을 서있다고 한다. 졸업생 중 약 3분의 1이 최고 명문 대학인 옥스퍼드대학과 케임브리지대학(옥스브리지, Oxbridge)에 입학할 정도로 명문대 진학이 보장돼 있기 때문이란다.
이런 이튼 칼리지(Eton College)를 보면 “전통은 훌륭한 자산(資産)”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나도 선배들 못지않은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생각을 저절로 가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비록 늦긴 했지만 지금부터라도 “한국인”이라는 칭호가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훌륭한 인성과 전통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말이 되게 해보자. 의리의 한국인, 용감무쌍(勇敢無雙)한 한국인, 약자를 배려하는 한국인, 힘든 일일수록 앞장서는 한국인, 그런 한국인의 전통을 만들어 가자. 머지않아 세계인들이 한국인을 주목하게 될 것이다.
-손 영일 컬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