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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상 칼럼] 행복론자들

이태상

“싸나희의 순정엔 미래 따윈 없는 거유. 그냥 순정만 반짝반짝 살아 있으면 그걸로 아름다운 거유. 그런 세계를 모르니까 세상이 이렇게 팍팍하고 험난한 게 아니겠슈”

 

시골 마을에 세입자로 들어와 살게 된 낭만파 시인과 동화작가가 되고 싶은 순정파 집주인 아저씨의 좌충우돌 스토리에 왈츠풍의 일러스트가 실린 스토리툰 ‘싸나희 순정’(공동 저자 류근 시인과 그림 작가 퍼엉)에 나오는 대화 한 토막이다. 동네 체육대회에 심판으로 파견 나온 여자 프로 축구 선수를 보고 반한 집주인 아저씨가 하는 말이다. 

 

이런 순정을 너도나도 우리 모두가 다 ‘다다’ 가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대규모 살육과 파괴로 이어진 근대 문명에 반기를 들고 기존 질서를 조롱하며 기존 예술, 도덕, 사상, 규범 등에 도전한 20세기 초 유럽 예술가들과 작가들의 스타일과 테크닉을 ‘다다’라고 부른다. 상상해 보자. 우리 모두가 다다 ‘다다이스트’가 된다고. 과거나 미래가 아니고 현재 지금 이순간에 열중하는. 우리 다다 각자는 각자대로 행복한 순간순간을 살기 위해서 말이다.

 

패럴 윌리암스의 네오 모타운 힛트 ‘행복한 24시간’이란 비디오에 백발이 성성하고 안경을 쓴 여인이 꽃무늬 옷차림에다 웃는 얼굴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고층 빌딩 주차장에서 춤추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느슨하게 목에 스카프를 걸치고, 온몸을 흔들면서 재즈 춤을 추는 이 여인은 두 손바닥을 활짝 펴서 마주치면서 좌우로 앞뒤로 또 저 하늘로 펄쩍펄쩍 뛴다. 달밤도 아닌 아침, 정확히는 9시 4분, 희열에 찬 황홀지경의 ‘유난 체조’다. 그러면서 이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부르는 노래는 ‘행복이 진리요 진실’이란 내용이다.

 

남가주에 사는 400여 명의 주민이 각자 4분씩 각자가 느끼는 행복감과 흥취를 춤과 노래로 24시간짜리 비디오에 담은 것이다. 이는 마치 저 유명한 ‘빗속의 노래’가 한 편의 영화로 하루 밤과 낮 24시간 동안 상영되는 것 같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행복의 시대임이 틀림없는 것 같다. 요즘 많이 쏟아져 나오는 책 제목들만 보더라도 ‘행복 해법’이니 ‘행복 프로젝트’니 ‘지금 당장 행복하기’니 ‘10% 더 행복하기’ 등이 나오고 있다. 

 

이 윌리암스의 비디오 ‘행복’에 열광적으로 호응하는 비디오만도 전 세계적으로 2천여 개나 만들어졌다. 이란을 비롯해 필리핀,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가자지역 등 분쟁지역들을 총망라해서 열광하고 있다. 지난 3월엔 ‘유엔의 국제 행복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초청된 윌리엄스 씨가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맨 꼭대기 층을 밝은 노란 색의 웃는 얼굴들로 불을 밝히는 점화식을 가졌고, 유엔총회회의장 홀에서 어린이들에게 지구라는 ‘하나의 행복한 유성’의 소중함에 대해 연설했다. 

 

유엔 건물 밖에서는 ‘행복론자들’이 길가와 길목마다 ‘모든 것이 경이롭고, 특히 당신과 당신의 행복은 그 이상이다’란 싸인 푯말을 들고 행복 복음을 전파했다. 이것은 우리 반기문 사무총장이 수장으로 있는 유엔이 지속 불가능한 개발정책과 날로 심해지는 빈부격차 및 기후변화에 맞서 싸우는 모든 대응책의 기본이 되리라. 나옹선사의 선시가 생각난다. 

 

 

생종하처래生從何處來 

올 때는 어느 곳으로부터 왔으며.

 

사향하처거死向何處去

갈 때는 어느 곳을 향하여 가는가?

 

생야일편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

태어남은 한조각의 뜬구름이 생겨나는 것과 같고

 

사야일편부운멸死也一片浮雲滅

죽는 것은 한조각의 뜬구름이 사라지는 것과 같으니

 

부운자체본무실浮雲自體本無實

뜬구름은 그 자체가 진실함이 전혀 없어

 

생사거래역여연生死去來亦如然

나고 죽고 가고 옴도 구름처럼 그렇다네.

 

아, 실로 그렇거늘, 무엇보다 순정을 갖고 지금 이 순간에 행복하리라.

 

 

2008년 9월 25일 태어난 내 외손자 Elijah 때문에 나는 상사병을 앓느라 계속 신음했었다. 상사병이란 주로 사춘기 때 특정 이성에 대한 연정에 사로잡혀 생기는 병인 줄로만 알았었는데 겪어 보니 그게 아닌 것 같다. 전생에 무슨 인연이라도 있었는지 태어나자마자 날 보고 빵긋 웃으며 눈을 맞춰 반색하더니 내 가슴을 제 침대 삼아 쌕쌕 잠도 잘 자곤 했다. 점점 커가면서 하는 짓마다 경이로워 내가 경탄성을 내지르며 오른 손바닥으로 내 오른쪽 무릎을 치노라면 저도 제 오른쪽 무릎을 제 오른 손바닥으로 내려치면서 깔깔댄다. 말을 하기 시작한 후 두 살 때인가 제 외할머니와 내 귀에다 대고 ‘사랑해, 참말이야’라고 하더니 얼마 전엔 큰 종이에다 큰 글씨로 ‘사랑해, 어떤 일이 있어도’라고 쓰고 제 이름 사인까지 해준다. 

 

3개월이나 조산해 인큐베이터에 2개월 이상 있다가 집으로 온 제 여동생 Julia를 조심스럽게 안고 ‘난 네 오빠 Elijah야. 난 널 사랑해, 언제나 항상 늘 널 사랑할 거야’라며 아기 이마와 볼에 뽀뽀를 퍼붓는다. 이런 Elijah를 보고 있노라면 마냥 빨려들고 너무너무 사랑스러워 가슴이 저리도록 아파져 온다. 아마도 모든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느끼는 공통된 감정이리라. 나보다 훨씬 먼저 할아버지가 된 친구들이 해 준 말 ‘두고 봐라. 네가 손자 손녀를 보게 되면 네 자식들 때보다 천만 배 이상 더 사랑하게 될 거다.’란 말을 절절히 실감하게 된다. 

 

‘해 아래 새것이 없다’는 말대로 모든 것을 이 세상에 태어나 보고 듣고 배워 모방하게 되는 것이라지만, 그래서 모든 것이 일종의 표절이고 언어를 배워 구사한다는 것부터 표절행위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사랑이란, 말이 필요 없는, 말 이전의 것임이 틀림없는 것 같다. 남녀 간 운우지락의 절정에서 부르짖는 신음소리부터 갓난아기가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다른 언어another language로 옹알거리는 소리 말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통한다고 하기보다 불가분의 관계로 같은 하나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기쁨과 슬픔이 그렇고 즐거움과 괴로움이 그러하며 삶과 죽음이 그러하지 않은가. 

 

덴마크의 철학자 겸 신학자 쇠렌 오뷔에 키르케고르(1813-55)가 기독교의 실존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낸 그의 저서 ‘죽음에 이르는 병’(1941)'에서 절망은 병이며, 이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리는 것은 인간뿐이다. 인간은 동물 이상이기 때문에 절망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병으로부터 치유되는 것이 기독교인의 행복이라고 주장했다지만 어쩜 그가 몰라도 한 참 모르는 소리를 한 게 아니었을까. 다시 말해 그가 상사병을 앓아보지 못한 까닭 아니었을까. 이 상사병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 아니고 영생에 이르는 약이 될 수 있어서이다. 그리고 이 쓰도록 달콤한 약을 통해 너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하며 우리 모두 다 행복해질 수 있어서이다. 한없이 끝없이 서로 상相, 생각할 사思, 앓을 병病을 앓다 보면 이 '상사병相思病'이 어느 틈에 '상사약相思藥'이 되어 영세무궁토록 행복한 영생불멸永生不滅에 이르게 되리라.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이메일 :1230ts@gmail.com

 

작성 2026.02.14 11:03 수정 2026.02.14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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