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엔진이 폭주할 때 — 새로운 산업혁명의 신호

2025년 노벨 경제학상 시상식 이후, 학계와 산업계에서 이 말이 회자됐다.
수상자 조엘 모키르, 필립 아기옹, 피터 호윗은 ‘혁신 주도 성장’의 메커니즘을 밝혀냈다는 이유로 영예를 안았다.
하지만 진정한 주인공은 무대 뒤편에서 조용히 미소 짓고 있던 또 하나의 존재였다. 바로 인공지능(AI)이다.
AI는 더 이상 도구가 아니다. 이제 AI는 인간 지식의 생산자이자 확산자이며, 혁신의 속도를 인간의 인지 한계를 넘어서는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이는 조지프 슘페터가 80년 전 묘사한
“창조적 파괴의 영원한 폭풍(perennial gale of creative destruction)”을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재현하는 사건이다.
증기기관이 인간의 근육을 대체했다면, AI는 인간의 ‘생각’을 대체하거나 확장한다.
정보의 분석, 전략의 수립, 심지어는 창작의 영역까지 — AI는 인간이 축적해온 지식의 패턴을 학습하고,
그로부터 새로운 ‘유용한 지식’을 만들어낸다.
이제 혁신은 더 이상 천재 개인의 영감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학습한 데이터의 결과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 지식의 폭주는 산업혁명보다 훨씬 빠르고 깊게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성장 문화’와 AI가 만든 지식의 가속 루프
조엘 모키르는 인류가 정체의 늪에서 빠져나와 지속적 성장을 이루게 된 이유를 “유용한 지식(useful knowledge)”의
축적과 “성장 문화(culture of growth)”에서 찾았다. 그는 계몽주의 이후 유럽 사회가 ‘왜(why)’와 ‘어떻게(how)’를
연결짓는 지적 문화를 구축함으로써 산업혁명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분석했다.
AI는 이 연결을 극단적으로 가속화하는 존재다. 과거에는 과학자가 명제적 지식을 탐구하고,
기술자가 이를 처방적 지식으로 응용하는 데 수십 년이 걸렸다. 하지만 이제 AI는 이 과정을 실시간으로 반복하며,
새로운 지식을 스스로 생성·검증한다.
예를 들어, AI는 유전체 데이터를 분석해 신약 후보를 제시하고, 그 실험 결과를 다시 학습해 더 정교한 모델을 만든다.
인간이 ‘왜’와 ‘어떻게’를 연결하던 느린 고리를, AI는 초지능적 루프(loop)로 대체한다.
모키르의 ‘성장 문화’가 사회적 개방성과 지식의 교류에 뿌리를 두었다면, AI는 전 지구적 데이터 네트워크 위에
‘성장 알고리즘’을 구축한다. 인간의 문화가 과거 성장의 토양이었다면, 이제 알고리즘의 구조가 새로운 토양이 된다.
바로 이 점에서 AI는 ‘두 번째 계몽주의’를 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품질 사다리’와 초가속화된 경쟁의 역설
아기옹과 호윗은 경제를 혁신 경쟁의 연속으로 보았다. 한 기업이 더 나은 제품을 내놓으면 기존 기업은 사라지고,
새로운 리더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이 순환은 ‘품질 사다리(quality ladder)’의 형태를 띤다.
하지만 AI 시대에는 이 사다리가 너무 빠르게 움직인다.
기업은 더 나은 품질의 제품을 내놓는 동시에, AI 덕분에 개발 주기가 단축되어 기존 제품의 수명은 급격히 짧아진다.
어제의 혁신가는 오늘의 기득권자가 되고, 내일의 패배자가 된다.
이 초가속화된 순환은 경제를 역동적으로 만들지만, 동시에 위험하다. 너무 빠른 파괴는 사회적 불안정성을 키우고,
R&D 투자 유인을 약화시킨다. 경쟁이 과도하면 혁신은 오히려 정체한다는 ‘역 U자형 관계(inverted-U)’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다.
더 심각한 문제는 불평등의 구조다. AI는 노동자 간 임금 격차를 좁히면서도 자본 소유자에게 부를 집중시킨다.
즉, 생산성의 이익은 인간이 아니라 알고리즘을 소유한 자에게 돌아간다.
혁신의 속도가 빠를수록 사회적 격차도 커지는 역설적 현실
— 이것이 바로 “AI 불평등의 역설”이다.
창조적 파괴를 관리하는 국가의 지혜
AI가 몰고 온 창조적 파괴의 시대에서 국가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기술의 속도를 늦출 수도, 단순히 시장의 힘에 맡길 수도 없다. 2025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의 통찰은 명확하다.
지속 가능한 성장은 단순히 혁신을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그 파괴적 결과를 현명하게 관리할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슘페터적 국가경영(Schumpeterian Statecraft)’이다. 즉, 혁신의 엔진을 가속하는 동시에
사회적 충격을 흡수할 완충 장치를 마련하는 이중적 전략이다.
국가는 AI 슈퍼기업의 독점을 막아 경쟁이 끊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공공 R&D 투자를 확대해 민간 혁신의
토양을 풍성히 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급속한 일자리 전환에 대응할 평생 학습 체계와
AI 리터러시 교육을 강화하는 일이다.
AI는 인간을 대체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인간의 ‘유용한 지식’을 증폭하고, 새로운 ‘성장 문화’를
구축하기 위한 도구다. 이 관계를 올바르게 관리할 수 있다면, 우리는 파괴를 넘어선 창조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다.

폭풍을 두려워하지 말고, 풍차를 세워라
AI의 시대는 이미 도래했다. 이 거대한 혁신의 폭풍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폭풍을 두려워하기보다, 그 바람으로 돌아가는 풍차를 세우는 것이다.
조엘 모키르가 강조한 개방적 문화, 아기옹과 호윗이 제시한 경쟁의 균형, 그리고 슘페터가
경고한 창조적 파괴의 본질을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이 변화의 힘을 제어할 수 있다.
AI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지식 진화의 다음 단계이며, 우리가 스스로 설계해야 할 문명 그 자체다.
이제 남은 질문은 단 하나다.
“우리는 이 폭풍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AI라이프 메이커 김교동 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