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콜로지코리아=이거룩 기자]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3년이 지났다. 법 제정 당시의 격렬한 논쟁을 뒤로하고 현장에는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났다. 기업들의 안전 투자가 양적으로 확대되고 핵심 재해 유형이 감소하는 등 분명한 성과가 확인됐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서류 작업 위주의 행정 부담과 고위험군 취약 근로자의 고용 위축이라는 뼈아픈 역설도 함께 나타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정수환 부연구위원이 발표한 ‘중대재해처벌법 3년, 데이터로 본 성과와 과제’ 보고서는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법 시행의 명과 암을 객관적인 수치로 극명하게 보여준다.
■ 데이터가 증명한 성과: ‘핀포인트’ 규제의 승리
보고서에 따르면 법 시행 이후 기업들의 안전 의식과 인프라는 확연히 개선됐다. 제조업·건설업·운수업 사업체 450곳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80% 이상이 안전관리자를 선임했다. 전체 안전 전문인력 규모 역시 법 시행 이전과 비교해 약 40% 급증했다. 기업의 77~85%가 "법 시행 이후 안전 수준이 개선됐다"고 체감할 정도다.
가장 고무적인 부분은 실질적인 사망자 감소 효과다. 통계 착시를 유발하는 교통사고 유입 요인을 제외하고 분석한 결과, 정부가 핵심 안전수칙을 제시했던 ‘3대 재래형 사고(떨어짐·끼임·부딪힘)’는 위험 산업군 기준으로 약 13% 감소한 것으로 추정됐다.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예측 가능한 집행이 뒷받침된다면 법적 규제가 실질적인 생명 구호로 이어질 수 있음을 증명한 통계다.
■ 현장의 그늘: ‘서류 폭탄’과 ‘겸직’의 한계
하지만 현장의 질적 성적표는 그리 밝지 않다. 기업의 76%가 "경영 부담이 증가했다"고 답했는데, 그 원인의 중심에는 ‘행정 업무’가 있었다. 업무량이 늘었다고 답한 사업체의 35.5%가 내·외부 서류 업무 증가를 가장 큰 요인으로 지목했다. 현장 안전을 돌봐야 할 시간과 자원이 '처벌 면피용' 서류 작성에 매몰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선임된 안전관리자 중 상당수가 타 업무를 겸직하고 있어, 양적 팽창에 비해 현장 감독의 질적 내실화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점도 확인됐다.
■ 가장 아픈 역설: 취약계층 일자리의 희생
이번 연구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경고등은 ‘고용 시장의 왜곡’이다. 법 시행 이후 위험도가 낮은 직업에 비해, 고위험 직업의 고용 규모는 최소 3.2%에서 최대 6.8%까지 감소한 것으로 추정됐다.
기업들이 중대재해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해 위험 공정을 축소하거나 외주화하면서 고위험 직군의 일자리를 줄인 것이다. 문제는 이 직격탄이 건설업 내 저임금·고령 근로자 등 노동시장의 가장 약한 고리에 집중됐다는 점이다. 근로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만든 법이, 역설적으로 취약계층의 생계수단을 가장 먼저 앗아가는 부작용을 낳은 셈이다.

KDI의 이번 연구는 중대재해처벌법이 무용론이나 만병통치약 같은 극단적 평가를 벗어나, 데이터 기반의 냉현한 보완 단계로 진입해야 함을 시사한다.
향후 중대재해처벌법을 둘러싼 정책 방향은 단순한 ‘처벌 강화’에서 현장이 이행할 수 있는 ‘예측 가능한 규제’로 무게추가 이동할 것으로 전망된다. 3대 재래형 사고가 줄어든 것처럼, 기업이 무엇을 지켜야 처벌을 면하고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표준 매뉴얼을 촘촘하게 제공하는 것이 급선무다. 동시에 비효율적인 행정 서류 절차를 간소화해 안전관리자가 '서류'가 아닌 '현장'에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일자리를 잃은 취약 근로자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 마련이다. 고위험 직군 기피로 인한 고용 위축을 방치할 경우, 노동 취약계층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산업안전 강화 프로세스 속에서 소외되는 저임금·고령 근로자들을 위한 맞춤형 전직 지원이나 안전 가이드라인 준수를 조건으로 한 고용 보조금 등의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법의 취지가 '처벌'이 아닌 '예방'에 있다면, 이제는 규제의 칼날을 매섭게 세우는 것만큼이나 그 칼날에 먼저 다치는 취약계층을 보듬는 정교한 정책 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