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화된 경기 침체와 갈수록 팍팍해지는 인심 속에서, 우리 사회의 가장 어둡고 소외된 곳을 향해 매주 수천 개의 따뜻한 빵을 구워내는 이가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수안사의 주지이자 승가결사체 ‘대행보현회’를 이끄는 묘담 스님이 그 주인공이다.
스님은 자신의 몸조차 가누기 힘든 중병의 고통 속에서도 1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결같이 오븐 앞을 지켜왔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웃들부터 우리 사회의 취약계층까지, 묘담 스님이 전하는 ‘자비애빵’에는 단순한 음식을 넘어 인간에 대한 깊은 예우와 사랑이 깃들어 있다.
◇주말 새벽 2시, 청소년·대학생들과 함께 '행동하는 보살'이 되다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든 주말 새벽 2시, 수안사의 작은 제빵실은 이미 뜨거운 열기와 활기로 가득 차오른다. 자욱한 밀가루 안개 속에서 고소하고 달콤한 빵 냄새가 배어 나오기 시작하면, 커다란 대야에 담긴 반죽을 치대고 성형하는 손길이 분주해진다. 화려한 수식어나 거창한 법문 대신 온몸으로 땀을 흘리며 부처님의 자비를 실천하는 묘담 스님, 그리고 스님의 뜻에 동참한 중·고·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의 하루는 이렇게 남들보다 훨씬 이른 새벽에 시작된다.
묘담 스님이 빵을 굽기 시작한 것은 약 10여 년 전,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웃들과의 인연에서 비롯됐다. 배고픔과 소외감에 신음하는 이들을 보며 스님은 깊은 고뇌에 빠졌다. ‘말로만 외치는 자비와 경전 속 구절이 당장 굶주린 이들에게 무슨 위로가 되겠느냐’는 뼈아픈 성찰이었다.
그 길로 스님은 행동하는 보살이 되기로 서원했다. 배고픈 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즉각적인 온기라는 생각에 직접 제빵 기술을 배웠고, 뜻을 함께하는 학생들과 힘을 모아 ‘대행보현회 자비애빵’을 탄생시켰다. 보현보살의 실천 행원을 세상 속에서 구현하겠다는 다짐이 주말마다 피어나는 고소한 빵 냄새로 발현된 것이다.
◇“존중받고 있음을 전하고파”... 하루 1,400개 빵에 담긴 인간적 예우
자비애빵에는 묘담 스님만의 확고한 원칙이 있다. 기부하기 전날 밤이나 당일 새벽에 빵을 구워, 전달되는 순간까지 반드시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도록 하는 것이다. 식어버린 기성품을 대량으로 구매해 나눠줄 수도 있지만, 스님과 학생들은 번거롭고 고단한 수작업을 고집한다. 이는 단순히 음식을 베풀어 시혜를 주는 것이 아니라, 받는 이들이 사회로부터 온전하게 대접받고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하기 위함이다.
현재 수안사 제빵실에서는 하루에 단팥빵 1,000개, 식빵 400개라는 엄청난 양의 빵이 만들어진다. 이 따뜻한 온기는 강북구 내의 불교복지관들과 주민센터, 그리고 여러 불교복지시설을 통해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웃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복지관을 찾으시는 분들도, 주민센터를 통해 도움을 받으시는 분들도 모두 귀하고 존엄한 존재들이다. 그들이 주말에 갓 구운 따뜻하고 부드러운 빵을 먹으면서 ‘아, 내가 아직 잊히지 않았구나, 누군가 나를 위해 이렇게 정성을 들이고 있구나’ 하는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 제빵실 오븐의 열기는 곧 그들을 향한 우리들의 마음의 온도다”
◇후두경부암 4기, 투병의 고통 속에서 피어난 더 큰 원력
그러나 이러한 나눔의 과정이 결코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묘담 스님은 후두경부암 4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고 생사의 갈림길에 서야 했다. 대수술과 혹독한 항암 치료,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수술 후유증은 일상적인 생활조차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주변에서는 모두 스님의 건강을 염려하며 제빵 활동을 만류했다. 밀가루 포대를 나르고 몇 시간씩 서서 반죽을 치대며 화덕의 열기를 견디는 일은 건강한 성인에게도 무척 고된 노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님은 자신의 고통에 침잠하는 대신, 오븐 앞을 지키는 것으로 고통을 승화시켰다. 몸이 아프고 힘들수록 소외된 이들이 마주한 현실의 무게가 더 크게 다가왔다고 스님은 나직하게 고백한다.
투병 중에도 한 번도 빵 굽는 일을 멈추지 않았던 스님의 원력은 자라나는 청소년과 대학생들에게도 큰 귀감이 되었다. 스님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한 학생들이 주말마다 자원봉사처인 수안사로 모여들어 힘을 보탰고, 덕분에 스님의 보시 행원은 멈추지 않고 더 견고하게 이어질 수 있었다.
◇가장 척박한 순간에 내미는 손길, 세상 전체로 넓혀갈 ‘자비의 불꽃’
최근 들어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로 인해 많은 사회복지 시설과 기부 단체들이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소외계층을 향한 온정의 손길도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이처럼 모두가 어렵다고 말하는 현실 속에서 묘담 스님과 학생들이 함께 쉼 없이 피워 올리는 자비의 불꽃은 더욱 특별한 울림을 준다. 나눌 수 있는 여유가 있어서 나누는 것이 아니라, 가장 힘들고 척박한 순간에 내미는 손길이야말로 진짜 구제(救濟)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묘담 스님은 더 큰 원력을 품고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현재는 한정된 설비 속에서 스님과 학생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매주 수천 개의 빵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앞으로 설비를 보완하고 시스템을 보다 체계화하여 더 많은 양의 빵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전문 제빵실을 건립하는 것이 목표다. 더 많은 이웃에게 갓 구운 빵의 온기를 전하고, 미래 세대인 학생들에게 나눔의 가치를 일깨워 이 문화를 우리 사회 전체로 확산시키기 위함이다.
어렵고 힘든 현실은 누구에게나 차갑게 다가오지만, 그 현실을 이겨내게 하는 힘은 결국 서로를 돌보는 따뜻한 연대와 사랑에 있다. 주말 새벽바람을 가르며 소외된 이들의 손에 쥐여지는 단 하나의 자비애빵. 그 안에 담긴 묘담 스님과 청년 자원봉사자들의 지극한 마음은, 우리 사회가 아직은 살만하고 따뜻한 곳임을 증명하는 가장 아름다운 증거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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