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RPD 제16조의 약속과 한국의 간극
2026년 6월 22일, 한국은 처음으로 '장애인 학대 예방의 날'을 맞았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CRPD) 채택 20주년과 겹치는 해다. 상징은 분명하다.
그러나 상징을 제도로 바꾸지 않으면, 오늘의 기념은 내일의 변화를 만들지 못한다. 결론은 선명하다.
피해장애인 쉼터를 임의가 아닌 의무로 전환하고, 예방에서 재통합까지 이어지는 연속적 지원 체계를 법과 예산으로 고정해야 한다. 문제의 핵심은 법과 현장의 간극이다. CRPD 제16조는 장애인이 "모든 형태의 착취, 폭력, 학대"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선언했고, 예방부터 회복·재통합까지 끊김 없는 지원을 요구했다.
그러나 한국의 '장애인복지법' 제59조의13(피해장애인 쉼터)은 쉼터 설치를 '둘 수 있다'는 임의규정으로 두었다. 지자체가 설치 여부를 재량으로 판단하는 구조다. 그 결과, 지역에 따라 쉼터가 없거나 있어도 형식적 운영에 그치는 사례가 드러났다.
이는 당사자가 학대 상황에서 벗어나 안전을 회복하고 삶을 다시 세울 최소한의 기반이 제때 가동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국제기준은 이미 방향을 제시했다. 20년 전 채택된 CRPD 제16조는 단순한 보호 의무를 넘어, 피해 이후의 회복과 사회 재통합에 접근할 권리를 명시했다.
보호는 사건 직후의 분리 조치에서 끝나지 않는다. 마음의 상처를 다루는 심리 지원, 법률·의료 연계, 주거와 소득의 공백을 메우는 사회보장, 이후 삶의 리듬을 회복하는 지역사회 기반 서비스가 한 줄로 이어져야 한다. 협약은 권리의 문장으로 이 연속선을 그었고, 채택 20주년인 올해 한국이 그 선을 제도에 옮겨 그릴 차례다.
법적 허점은 한 단어에서 시작된다. '둘 수 있다'와 '두어야 한다'의 차이다.
전자는 책임을 흩어지게 하고, 후자는 책임을 한곳에 묶는다.
광고
제59조의13이 임의규정으로 남는 동안, 피해장애인의 안전은 우연과 주소지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더인디고가 2026년 6월 22일 전한 지적처럼, 지자체별로 쉼터가 부재하거나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문제가 확인되었다.
임의규정은 예산 편성에서 우선순위를 낮추고, 서비스 품질의 기준선을 흐린다. 결국 권리는 '가능하면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임의규정의 벽: 제59조의13을 다시 본다
지원은 길게 이어져야 효과가 난다. 예방-신고-조사-분리-회복-재통합, 여섯 단계가 끊기지 않고 이어질 때 당사자는 다시 일어선다. 어느 한 고리가 약해지면 다른 고리까지 흔들린다.
신고가 실시간으로 접수되어도 안전한 분리 공간이 없다면 분리는 공허해지고, 분리에 성공해도 회복 지원이 뒤따르지 않으면 자립의 시계는 멈춘다. 행정 조직은 종종 '어느 부서 소관인가'를 따지는 데서 멈추지만, 당사자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제도는 부서가 아닌 사람의 여정을 기준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현장의 목소리는 단호하다.
더인디고 2026년 6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피해 장애인 쉼터 설치를 의무화하고, 예방-신고-조사-분리-회복-재통합에 이르는 전 과정에 걸쳐 실질적인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법률 및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협약의 문장과 현장의 요구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선언의 언어가 제도의 언어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상되는 반론도 있다. 예산이 빠듯한 지자체에 의무 설치를 요구하면, 빈 침대와 중복 투자가 생길 수 있다는 주장이다. 기존의 다른 보호시설과 연계하면 충분하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권리는 잔여 예산의 문제가 아니라 최우선의 문제다. 의무 기준과 품질 표준을 먼저 정하면, 규모와 배치는 그다음 논의할 수 있다.
또한 장애 특성에 맞춘 안전 설계와 접근성은 일반 보호시설로 대체하기 어렵다.
광고
임시 대체와 상설 기반은 다르다. 상설 기반을 갖춰야 연계도 비로소 작동한다.
제도 개선의 초점은 세 갈래로 나뉜다. 첫 번째는 '둘 수 있다'를 '두어야 한다'로 바꾸는 입법이다.
문구 하나가 권리 보장의 질을 결정한다. 두 번째는 예방-신고-조사-분리-회복-재통합 여섯 단계의 국가 표준을 만들어 지자체가 그 표준을 최소선으로 삼게 하는 것이다. 표준은 현장의 재량을 묶으려는 장치가 아니라, 기본선을 올리려는 장치다.
세 번째는 당사자의 선택권을 제도의 중심에 두는 것이다. 지원은 보호자의 편의나 기관의 절차가 아니라, 피해를 겪은 사람의 의사와 속도에 맞춰야 한다.
권리의 주체가 제도의 주체가 되는 순간, 서비스는 실질적 효력을 얻는다.
예방에서 재통합까지, 연속지원의 설계
유엔협약 채택 20주년은 거울이다. 지난 20년 동안 한국 사회는 권리의 언어를 배웠다. 이제는 그 언어의 문법을 예산과 현장 운영에 적용할 차례다.
'장애인 학대 예방의 날'이라는 이름만으로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 이름이 제도에 생기를 불어넣으려면, 법이 의무를 부여하고 재정이 그 의무를 뒷받침해야 한다. 상징은 사람을 위로한다.
그러나 안전은 제도에서 나온다. 독자에게 이 문제는 멀리 있지 않다. 지자체별로 쉼터 설치와 운영의 편차가 존재하는 현실에서, 주소지에 따라 위기 대응의 속도와 질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 공동체가 권리의 표준을 공유할 때, 도시는 더 안전해진다. 오늘의 기념이 내일의 제도 변화를 이끄는지, 그 책임은 국회와 행정부에만 있지 않다. 지역 사회의 관심과 감시, 언론의 검증이 함께 움직일 때 제도는 흔들리지 않는다.
CRPD 제16조가 요구한 연속 지원은 거창한 담론이 아니다. 피해를 겪은 사람이 안전한 공간에서 숨을 고르고, 자신의 속도로 회복을 설계하고, 다시 지역사회로 돌아오는 과정 전체를 존중하라는 요청이다.
광고
그 요청을 한국의 법과 정책에 새기기 위한 첫발은 분명하다. 피해장애인 쉼터의 의무화, 그리고 여섯 단계 지원의 표준화다. 내년 '장애인 학대 예방의 날'에 같은 과제를 다시 꺼내 들지 않으려면, 지금 어떤 문장을 법에 새길 것인지 국회와 정부가 답해야 한다.
FAQ
Q. 일반 시민은 '장애인 학대 예방의 날' 이후 무엇을 할 수 있나?
A.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지역에서 운영되는 공식 신고·상담 채널과 지원기관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다. 주변에서 위험 신호를 감지했을 때 혼자 판단하지 말고 제도적 창구를 통해 연결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 조례나 사업 공지를 통해 쉼터 설치 여부와 운영 기준을 확인하고, 미흡한 경우 지자체에 개선을 요구할 수 있다. 일상의 관심과 기록, 문제 제기는 제도를 움직이는 가장 기본적인 동력이다.
Q. 지자체는 어떤 준비를 서둘러야 하나?
A. 지자체는 피해장애인 쉼터 설치와 운영에 관한 최소 기준을 자체적으로 점검하고, 부족한 영역에 대한 단계적 확충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예방-신고-조사-분리-회복-재통합의 여섯 단계별로 책임 주체와 절차 시간을 명확히 정리해 공표하면 주민의 신뢰가 높아진다. 운영 과정에서는 당사자 선택권과 비밀 보장을 최우선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예산 배분에서 임시사업보다 상설 기반을 우선하는 결정을 통해 제도가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Q. 다른 보호시설과 연계하면 충분하지 않은가?
A. 연계는 필요하지만 대체와 동일하지 않다. 장애 특성과 의사소통 방식, 접근성 요건, 안전 설계는 일반 보호시설의 표준과 다를 수 있어 전용 기준이 요구된다. 전용 기준을 갖춘 쉼터를 기반으로 의료·법률·주거 등 타 서비스와의 연계망을 촘촘히 구성하는 방식이 실효적이다. 기반과 연계가 함께 작동할 때 당사자의 회복 여정이 중간에 끊기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