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보의 일히일비(16) - 숫양은 온순한 존재가 아니다

160kg 숫양이 품은 야성과 '지랄 총량의 법칙'

말 잘 듣던 큰아들의 반전 본색

인류 생존의 열쇠가 된 야성… 숫양이 숫양다울 때 공동체는 유지된다

 

 

אַיִל (아일) - 숫양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창 22:13)

 

초식동물인 ‘양’은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동물이다. 양은 사람들에게 아주 온순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모든 양이 그렇지는 않다. 암양(Ewe)의 경우에는 온순하다는 표현이 잘 맞겠지만, 160kg까지 성장하는 숫양(Ram)은 공격적이고 지배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 번식기에는 사람에게도 들이받는 공격성을 보일 정도라고 한다.

 

양 무리에서도 숫양과 암양의 성향이 다르듯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나에게는 아들이 둘, 딸이 하나 있다. 첫째와 막내가 아들이다. 막내는 원래부터 신경질적이고 공격적인, 딱 숫양 같은 녀석이다. 그런데 첫째는 많이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다. 뭐든 '네'라고 대답했고, 마치 암양처럼 온순하고 순종적으로 보이는 녀석이다. 공격과 반항의 아이콘으로 살아왔던 나에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아이였다.

 

하지만, 나는 '지랄 총량의 법칙'을 믿고 있다. 이 법칙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지랄성의 총량은 동일하다는 법칙이다. 가령 어릴 적에 사고를 많이 친 아이들은 나중에 착해진다거나, 어릴 적에 순종적이고 말 잘 듣던 아이들은 나중에라도 비슷한 양의 사고를 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만 주변을 잘 관찰해 보면 그런 케이스가 주변에 널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온순하고 순종적으로 보였던 큰 애는 과연 '암양'같은 아이였을까? 전혀 아니다. 막내가 숫양 같은 공격성을 뿔로 들이받는 행동으로 드러냈다면, 큰 애는 행동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다. 그래서 '네'라고 대답은 하지만 대답에 걸맞는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게 큰 애가 체득한 '편하게 살아가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랬던 녀석이 얼마 전부터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반항적이고 공격적으로 살아왔던 내가 가만히 둘 리가 없지 않겠는가. 녀석을 슬슬 자극하며 긁어댔다. 그러자 힘으로든 말로든 위계로든 나를 이길 수 없는 녀석이지만, 몇 번 대들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화가 났을까? 전혀 아니다. 오히려 기뻤다. 녀석이 본색을 드러내자 처음에는 충돌이 종종 생겼지만, 점점 결속력이 다져졌다. 그리고 서로가 어떤 부분에서 충돌이 생기는지 인식하기 시작했고, 이해도도 더욱 커졌다.

 

지랄 총량의 법칙은 나 역시 적용된다. 지금의 나를 보는 사람들 중에는 내 종교와 직업만 보고 아주 순종적이고 성실한 어린 시절을 보냈을 거라 짐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짐작은 완벽한 착각이다. 오죽하면 내 어머니는 예전에 "하나님, 저는 저 자식을 키울 수 없습니다. 감당이 안 됩니다. 하나님께 맡기오니 하나님께서 죽이시든 살리시든 알아서 해주세요."라는 기도를 십수 년간 하셨겠는가.

 

모든 존재는 '~다워야' 한다. '다름'(difference)을 인정하면서도 다워야 한다. 숫양은 숫양다워야 한다. 수컷은 수컷다워야 한다. 나는 의학적, 생물학적, 동물학적으로 남자, 즉 수컷이다. 수컷이 공격적이고 반항적이라는 것은 전혀 부끄럽거나 잘못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양무리에서 수컷의 공격성이 기능적으로 사용되듯 인간 사회에서도 이러한 공격성이 기능적으로 잘 사용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는 사회적 책임에 대한 교육을 통해 제어가 가능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숫양 중에 온순한 개체가 많다면, 집단 자체가 생존하기 힘들어진다. 왜냐하면, 집단을 보호하고 번식 경쟁을 조율하는 공격성이 부족해져 외부 위협과 내부 질서 유지에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 남녀가 동일하게 온순한 성향을 갖고 있었다면, 인류는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요즘 'No'라고 당당하게 말하곤 하는 큰 애를 보면, 점점 늠름한 숫양으로 자라고 있는 것 같아 무척 자랑스럽다.

 

 

 

허동보 목사(Rev. Huh Dongbo) | 수현교회(Suhyun Church)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AI시대, 히브리어로 답하다』 외

 

 

 

작성 2026.06.13 04:47 수정 2026.06.14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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