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신년사에서 던진 이 한마디가 약 반년 만에 구체적 행동으로 폭발했다. 삼성그룹은 9일 전 관계사의 모든 업무 가치사슬(밸류체인)에 인공지능(AI)을 접목하는 'AI 대전환(AX)'을 전격 선언했다. 단순히 AI 도구를 직원들에게 쥐여주는 수준이 아니다. 글로벌 산업 패러다임이 AI 중심으로 재편되는 상황에서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기업 생존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전제로 한, 기업 체질의 전면 교체 선언이다.
■ 삼성 AI 대전환의 진짜 의미
전문가들은 이번 삼성의 선언이 단순한 기업 전략을 넘어선다고 본다.
1. 삼성의 '위기 DNA'가 발동됐다
삼성은 위기 때마다 역사적 전환을 단행해왔다. 1993년 이건희 회장의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신경영 선언, 1997년 외환위기 속 반도체 집중 투자, 2010년대 스마트폰 시대 선점. 이번 선포에는 일하는 방식과 마음가짐의 근본적 전환 없이는 어떠한 기업도 한 순간에 도태될 수 있다는 절박한 위기의식과 강력한 실행 의지가 담겨 있다. 이재용 회장이 신년사에서 예고한 지 반년 만에 실행에 들어갔다는 점에서, 이번 전환은 이미 후퇴 없는 '전사 명령'에 가깝다.
2. AI를 '쓰는' 것에서 AI로 '살아가는' 단계로
지금까지의 기업 AI 도입은 특정 부서나 업무에 한정된 '도구 도입'이었다. 삼성이 선언한 것은 다르다. 그룹 차원의 AI 활용 범위가 반도체·스마트폰 등 R&D와 개발 조직을 넘어 인사, 재무, 법무, 구매, 마케팅 등 경영 전반에 생성형 AI를 적용하는 방식으로 업무 혁신에 나선 것이다. 이는 AI를 도구로 '사용'하는 단계를 넘어, AI가 기업 운영의 기본 언어가 되는 'AI 네이티브' 단계로의 전환이다. 마치 2000년대 초 인터넷이 특정 업무의 도구에서 기업 운영 전체의 인프라가 된 것과 같은 패러다임 전환이다.
3. HBM 반도체 공급자이자 AI 소비자로서의 이중 전략
삼성은 AI 반도체(HBM)를 만드는 공급자이면서 동시에 생성형 AI를 적극 활용하는 소비자가 된다. 이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AI 도입 과정에서 자사 서비스와 기술의 실전 적용 사례를 직접 축적하고, 이를 향후 B2B AI 솔루션 사업으로 연결할 수 있다. "삼성이 AI를 이렇게 쓴다"는 레퍼런스 자체가 강력한 마케팅이 된다.
■ 국내 기업들에게 미칠 파급 효과
"삼성이 움직이면 재계가 움직인다."
이 공식은 AI 시대에도 예외가 아니다. 삼성의 이번 선언은 국내 기업 생태계 전반에 세 가지 압력을 가할 것으로 분석된다.
① 재계 대기업들의 AI 전환 경쟁 가속화
삼성이 전 임직원 AI 교육과 전담 조직 신설에 나서면서, 경쟁 대기업들의 추격이 불가피해졌다. 이미 SK그룹은 AI 컴퍼니 선언 후 SK텔레콤 중심으로 AI 전환을 추진 중이고, LG그룹도 LG AI연구원을 중심으로 그룹사 AI 내재화에 힘을 쏟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엔비디아와의 협력으로 로보틱스·자율주행 AI를 강화하고 있다. 삼성의 전면적 AX 선언은 이들 그룹에게 강력한 경쟁 자극이 될 전망이다.
② 중견·중소기업으로의 AI 전환 압력 전이
삼성의 협력사와 거래 기업들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이 미친다. 삼성이 8대 업무 프로세스 전반에 AI를 도입하면, 납품·거래·협력 과정에서도 AI 기반 시스템 대응 능력이 요구될 가능성이 높다. AI 대전환의 물결이 협력사 생태계로 확산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③ AI 인재 확보 경쟁의 폭발적 심화
전 임직원 AI 교육이 완료되더라도, AI를 실질적으로 기업 전략에 연결할 고급 AI 인재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삼성이 AI 전담 조직에 역량 있는 인재를 흡수하기 시작하면, 스타트업과 중소·중견기업의 AI 인재 이탈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 AI 인재 양성과 확보를 둘러싼 재계 전쟁이 한층 치열해질 것이다.
④ AI 솔루션·교육 시장의 급속 팽창
삼성이 챗GPT, 제미나이, 클로드를 공식 도입한 것은 이들 글로벌 AI 서비스 기업에게도 한국 시장 진출의 강력한 레퍼런스가 된다. 또한 AX 부트캠프 모델이 다른 대기업들로 확산되면서, AI 기업 교육 시장이 급격히 팽창할 것으로 예상된다.
■ 글로벌 흐름과의 정합성 — 삼성은 늦었나, 적시인가
일부에서는 삼성의 AI 전환이 글로벌 빅테크에 비해 늦었다는 시각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23년부터 전 제품에 코파일럿(Copilot)을 통합했고, 구글은 제미나이를 전 서비스에 적용했다.
그러나 이를 단순 지연으로 보기는 어렵다. 삼성의 특수성이 있다. 제조·반도체·가전·모바일을 아우르는 초복합 사업 구조, 전 세계 수십 개국에 걸친 글로벌 운영 체계, 수십만 명의 임직원. 이 거대한 조직을 일시에 AI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은 빅테크의 소프트웨어 중심 전환과는 차원이 다른 과제다. 오히려 이번 삼성의 선언은 제조 대기업이 AI 네이티브로 전환하는 글로벌 선도 사례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정찬
· (전)서울시의회 의원, 서울시의회독도특위위원장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 서울남부지방법원조정위원
· 서울대 인문정보연구소 AI 전문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