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가 우리의 삶을 치유할 수 있을까. 이 질문 하나를 붙들고 200년 한국 근현대사를 새롭게 읽는 책이 나왔다. 한국사 테라피는 정답만 외우며 살아온 한 역사학도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 스스로 물어야 했던 14가지 질문들을 담은 첫 대중 역사서다. 이 책이 말하는 것은 단순하지 않다. 역사는 사실의 기록이기 이전에 한 민족이 겪어온 집단적 트라우마의 지층이라는 것, 그리고 그 지층을 직면할 때 비로소 치유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저자 전범선은 민족사관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다트머스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한 뒤 영국 옥스퍼드대학 대학원에서 역사학 석사학위를 받은 역사학도이자, 현재는 밴드 양반들의 보컬로 활동하는 이색적인 이력의 소유자다. SPNS TV와 공동 기획한 이 책은 2026년 3월 자크드앙에서 출간됐다. 역사학의 엄밀함과 대중 문화의 감수성을 함께 가진 저자가 써내려간 이 책은, 교과서가 가르쳐주지 않은 한국사의 결들을 낯설고 선명하게 드러낸다.
전범선이 조명하는 역사의 풍경은 우리가 익숙하게 알던 것과 다르다. 친일파의 상징으로 각인된 이완용이 정작 죽을 때까지 단 한 글자도 일본어를 배우지 않았다는 사실, 나라를 팔아넘긴 인물이 일본인과 마주할 때조차 영어로만 소통했다는 아이러니는 우리가 견고하게 쌓아온 선악의 이분법을 흔들어놓는다. 반면 불세출의 독립운동가로 추앙받는 안중근이 한때 일본의 러일전쟁 승리를 동양의 희망이라 진심으로 기뻐하며 한국과 일본이 동양의 벗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는 사실 또한 전범선은 숨기지 않는다. 그는 이 이야기들을 통해 독자에게 묻는다. 우리는 역사를 이념의 도구로 써온 것은 아닌가, 편가르기와 죄책감의 감옥 안에서 정작 중요한 것을 놓쳐온 것은 아닌가.
책의 또 다른 축은 잊혀진 정신의 복원이다. 전범선은 서구적 개화의 프레임에 갇혀 역사의 뒤편으로 밀려났던 동학의 개벽 정신을 전면에 불러낸다. 최제우가 씨앗을 뿌린 개벽사상, 서재필의 독립정신, 함석헌과 류영모가 주창한 국가주의를 넘어선 평화주의의 계보, 그리고 호머 헐버트가 발견한 한국 문화의 위대함을 시인 김지하가 제시한 태극의 정신으로 엮어내며, 그는 한국사를 상처의 기록이 아닌 가능성의 지도로 다시 그린다. 이 책은 죄책감도 분노도 애국심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한국사의 민낯을 가감 없이 마주하고, 그 안에서 잊혀진 멋과 흥과 신명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14가지의 테라피로 함께 걸어가자고 청한다.
역사학자 이병한 교수는 이 책을 두고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이어 한 세대의 좌표이자 한 시대의 이정표가 될 책이라 평했다. 전범선은 책 속에서 이렇게 썼다. "죄책감도 분노도 애국심도 강요하지 않는 역사를 만나고 싶다." 이 문장이 오래 남는다. 강요 없이, 편견 없이, 다만 직면하는 것. 그것이 전범선이 말하는 치유의 시작이다. 독자들에게 이 책은 단순한 역사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전범선이 책의 문을 여는 열쇠로 삼은 것이 다름 아닌 최제우의 개벽사상이라는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동학의 개벽 정신은 증산도 사상의 뿌리와 깊이 닿아 있으며, 최제우가 열어젖힌 그 문을 증산 상제님이 완성하셨다는 것이 증산도의 핵심 가르침이다. 한국 근현대사가 겪어온 집단적 트라우마, 식민과 분단과 이념 갈등의 상흔을 치유의 눈으로 바라보는 전범선의 시선은, 후천 문명이 요청하는 해원상생의 정신과 방향을 같이한다. 묵은 원한을 풀고 새 세상을 함께 여는 것, 그것이 후천 개벽의 핵심이며 이 책이 말하는 역사 치유의 궁극이기도 하다. 한민족이 걸어온 길을 새 눈으로 바라보고 싶은 독자라면, 전범선이 건네는 14번의 테라피가 깊은 울림으로 다가올 것이다.
— 전범선 지음 | 자크드앙 | 2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