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이자 세계적인 관광도시를 지향한다. 그러나 부산의 관문인 부산역 도시철도 역사에서 경험한 현실은 의외였다. 현금이 없으면 지하철 승차권 한 장조차 구매하기 어려운 시스템이 여전히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세계가 인정하는 디지털 결제 강국이다. 스마트폰 하나로 음식값을 내고, 택시를 타고, 은행 업무까지 처리한다. 해외 관광객들조차 한국의 편리한 결제 환경에 놀란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AI 산업 육성, 디지털 전환, 스마트시티 구축을 미래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정작 시민이 가장 자주 이용하는 대중교통 현장에서는 시대착오적인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최근 부산역에서 도시철도를 이용하려던 필자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겪었다. 교통카드 기능이 없는 신용카드만 소지한 상태에서 1회용 승차권을 구매하려 했지만 발매기에서는 카드 결제가 불가능했다. 역무원에게 문의한 결과 돌아온 답변은 단순했다.
"ATM에서 현금을 인출한 뒤 다시 오십시오."
순간 의문이 들었다.
2026년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부산의 중심 교통거점에서 시민이 지하철을 이용하기 위해 현금을 찾아다녀야 하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서비스인가. 물론 준비하지 못한 이용자에게도 책임은 있다. 교통카드를 챙겼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공공서비스는 모든 시민이 실수 없이 행동할 것을 전제로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상황에서도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문제는 개인의 준비 부족이 아니라 부산교통공사의 서비스 철학이다. 부산교통공사는 매일 수십만 명의 시민과 관광객이 이용하는 공공기관이다. 특히 부산역은 국내외 관광객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관문 중 하나다. 교통카드가 없는 외국인 관광객, 디지털 결제에 익숙한 젊은 세대, 일시적으로 교통카드를 소지하지 못한 이용자 등 다양한 상황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현금 중심의 승차권 구매 방식이 유지되고 있다면 이는 단순한 불편의 문제가 아니라 행정 감수성의 문제다.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부산교통공사가 끊임없이 스마트 교통, 디지털 혁신, 미래형 도시철도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래를 이야기하는 기관이라면 가장 먼저 시민이 체감하는 기본 서비스부터 개선해야 한다.
AI 기술을 도입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이 현금 없이도 지하철을 탈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블록체인과 가상자산이 세계 금융 시스템의 일부로 논의되고, QR 결제와 모바일 인증이 일상화된 시대다. 해외 주요 도시에서는 신용카드 태그 한 번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 일부 국가는 관광객이 별도 교통카드조차 구매하지 않아도 된다.
반면 부산의 일부 도시철도 이용 환경은 여전히 현금 인출을 전제로 움직이고 있다. 이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의지의 문제다. 부산교통공사는 이제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현재의 승차권 발매 시스템이 정말 시민 중심의 서비스인가?
관광도시를 표방하면서도 외국인과 비정기 이용자를 충분히 고려하고 있는가?
디지털 전환을 말하면서 가장 기본적인 결제 환경조차 개선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공공서비스의 수준은 화려한 홍보 문구가 아니라 시민이 실제로 경험하는 편의성에서 평가받는다. 부산교통공사가 진정으로 미래형 도시철도를 지향한다면 시민에게 ATM 위치를 안내할 것이 아니라, 현금이 없어도 누구나 쉽게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야 한다.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거창한 미래가 아니다. 상식적인 현재다.
최근 선거 과정에서 드러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각종 관리 부실 논란은 국민들에게 적지 않은 실망감을 안겼다. 문제의 본질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국민의 신뢰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들이 시대 변화와 국민 눈높이에 얼마나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부산교통공사 역시 같은 질문에서 자유롭지 않다. 시민과 관광객이 가장 먼저 접하는 공공서비스인 도시철도에서조차 디지털 결제 환경 변화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면, 이는 단순한 불편의 문제가 아니라 행정 서비스의 감수성과 혁신 의지의 문제로 볼 수 있다.
오늘날 시민들은 과거와 다르다. 생활 방식이 바뀌었고 결제 방식이 바뀌었으며 기술 환경도 완전히 달라졌다. 그러나 일부 공공기관은 여전히 과거의 관행과 업무 방식에 머물러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변화한 현실에 맞게 움직이는 상식적인 행정이다.
부산교통공사는 시민들에게 ATM 위치를 안내하는 기관이 아니라, 시민들이 그런 불편을 겪지 않도록 시스템을 개선하는 기관이어야 한다. 디지털 시대를 이야기하면서 현금을 전제로 서비스를 운영하는 현실. 그것이야말로 부산교통공사가 진지하게 돌아봐야 할 대목이다.
윤교원 대표 / The K Media & Commerce, kyoweon@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