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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다르다넬스 지상전 111주년 추모식, 갈리폴리에 다시 모인 옛 교전국들

적이었던 8개국이 한 무덤 앞에 모였다, 갈리폴리의 기적

카네이션 한 송이가 총성을 이기기까지 걸린 111년

전멸한 57연대, 튀르키예가 그 이름을 영원히 비워 둔 이유

▲ AI 이미지, 중동디스커버리신문 제공

다르다넬스 해협으로 봄볕이 내려앉은 어느 날, 갈리폴리 반도의 순교자 기념비 앞에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한 세기 전 서로의 가슴을 겨누었던 나라들이, 이번에는 같은 묘비 앞에 나란히 고개를 숙였다. 차나칼레 지상전 111주년을 맞아, 튀르키예와 더불어 여러 나라의 대표가 참석한 추모식이 거행됐다. 총성이 멎은 자리에 사이렌 대신 진혼의 기도가 흘렀고, 전장이었던 땅은 화해의 무대로 옷을 갈아입었다. 이 글은 그 카네이션 한 송이가 남긴 질문을 따라, 111년의 세월을 거슬러 오른다.

 

왜, 다시 이 자리인가

 

이야기는 1915년으로 거슬러 오른다. 그해 4월 25일, 연합군은 갈리폴리 반도 서안의 안작 코브와 북쪽 해안, 그리고 남단 헬레스에 상륙했다. 이것이 차나칼레 지상전의 시작이다. 옛 오스만 제국의 운명과 한 젊은 지휘관의 이름이 이 좁은 반도에서 갈렸다.

 

그 중심에 제57보병연대가 있다. 제57연대는 제19사단장 무스타파 케말 중령이 훈련시킨 부대로, 1915년 3월 차나칼레로 향했다. 케말은 탄약이 바닥난 병사들에게 "나는 너희에게 공격하라 명하지 않는다. 죽으라 명한다"는 비장한 명령으로 능선을 사수하게 했다. 제57연대는 1915년 4월 25일 사실상 전멸했고, 이후 그 희생을 기려 튀르키예군의 명예 부대로 남아 현역 편성에서 이름이 영구히 비워졌다. 전투는 그해 12월 연합군이 진지를 버리고 물러나기까지 이어졌다. 4월 25일이 오늘날 호주와 뉴질랜드의 '안작 데이'로 기억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무엇이, 누가 이 예식을 채웠나

 

기념식은 차나칼레 주지사 외메르 토라만이 아타튀르크 기념비에 별과 초승달이 새겨진 화환을 바치며 시작됐다. 묵념과 조총 발사에 이어 국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튀르키예 국기가 게양됐다. 토라만 주지사는 오늘 이 자리는 단지 군사적 투쟁을 기리는 것이 아니라, 인류사에 깊은 자취를 남긴 시대의 기억을 살려, 그날의 희생과 고통을 공동의 이해로 추모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연합국을 대표한 목소리도 울렸다. 협상국을 대표해 연단에 선 프랑스 대표 야니크 보쉬는, 전사한 병사들에게 경의를 표하고자 갈리폴리 반도에 선 것을 영광이라 밝혔다. 그는 다르다넬스가 참전국들의 공동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의 무대가 됐다며, 양측 모두 무거운 희생을 치렀음을 강조했다. 한때 적대 진영에 섰던 프랑스와 튀르키예가 이제는 동반자로 서 있다는 그의 말에는, 큰일은 함께 일할 때 이룰 수 있다는 아타튀르크의 어록이 포개졌다. 차나칼레 전적지 역사 지구 책임자 이스마일 카슈데미르는 이곳을 해마다 수백만 명이 찾는 세계 최대의 야외 박물관이라 표현했다.

 

예식의 결은 군례에만 머물지 않았다. 레벤트 콜은 1915년 4월 25일 전사한 유수프 케난 대위를 다룬 '한 차나칼레 영웅'이라는 헌정 낭독을 이어갔다. 토라만 주지사 일행은 기념비 둘레의 상징적 순교자 묘에 카네이션을 놓고 방명록에 서명한 뒤 기도했으며, 전사자를 위한 쿠란 낭송과 기도가 봉헌됐다. 옛 오스만 군악대의 연주가 끝나자, 제57연대를 선두로 외국 군인과 참전용사, 스카우트 대원들이 분열 행진을 펼쳤고, 튀르키예 공군 곡예비행팀이 해협 위를 갈랐다.

 

적이었던 손들이 한자리에

 

이날 추모의 무게는 참석자 명단에서 더욱 또렷해진다. 뉴질랜드 총독 신디 키로 부부, 호주 국방군 사령관 데이비드 존스턴, 뉴질랜드 국방군 부사령관 매슈 윌리엄스가 자리했고, 호주·뉴질랜드·영국·아일랜드·캐나다·파키스탄·프랑스·몰타의 대사와 고위 인사들이 함께했다. 1915년의 전선에서 총구를 마주했던 바로 그 나라들이다. 이 추모식은 1915년 전선의 양편에서 싸운 나라들의 대표가 다시 모인 자리였다. 튀르키예 측에서는 제1군 사령관 바흐티야르 에르사이 대장을 비롯한 군 지휘부와 차나칼레 온세키즈 마르트 대학 총장 등 각계 인사가 참석했다.

 

카네이션 한 송이의 묵상

 

나는 이 기사를 쓰며 한 장면 앞에서 오래 멈춘다. 옛 적국의 대표가 튀르크 병사의 상징적 무덤 앞에 카네이션을 내려놓는 손이다. 그 손은 111년 전 방아쇠를 당겼을지 모를 손의 후예다. 그러나 오늘 그 손은 꽃을 든다. 역사가 가르치는 가장 더딘 진리가 여기 있다. 증오는 한 발의 총성으로 시작되지만, 화해는 한 송이 꽃을 놓기까지 한 세기를 요구한다는 것.

 

전쟁은 늘 '우리'와 '그들'을 가른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갈리폴리의 능선에는 더 이상 그 경계가 보이지 않는다. 안작 코브에 묻힌 열아홉 살 청년이나, 콘크바이르를 지키다 스러진 제57연대의 병사나, 같은 흙이 되어 같은 바람을 맞는다. 어머니의 눈물에는 국적이 없고, 무너진 가정의 빈자리에는 승패가 없다. 

 

우리가 진정 기려야 할 것은 누가 이겼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잃었는가일 것이다. 그 잃음 앞에서 인간은 비로소 겸허해진다. 오늘 이 평화로운 해협을 바라보며,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그들의 죽음에서 무엇을 배웠고, 또 무엇을 끝내 배우지 못했는가?

작성 2026.06.09 00:35 수정 2026.06.09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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