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의 이른 퇴근
며칠 전, 오랜만에 조금 일찍 퇴근을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부터 괜히 마음이 가벼웠다. 평소보다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저녁식사를 함께하고 설거지까지 마친 뒤, 나는 아들과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아내는 거실 한편에서 실내 자전거를 타고 있었고, 나는 아이와 작은 공 하나를 주고받으며 캐치볼을 하고 있었다. 아이는 몸으로 노는 시간을 참 좋아한다. 공 하나만 있어도 금세 웃음소리가 커지고, 작은 놀이 하나에도 온 힘을 다해 즐거워한다. 나 역시 그런 시간이 좋다. 함께 뛰고 웃다 보면 하루의 피로가 조금씩 사라지는 느낌이 든다. 그날도 그렇게 한 시간 가까이 시간을 보냈다.
약속과 투정 사이
운동이 끝날 즈음, 나는 아이에게 씻을 준비를 하자고 말했다. 사실 캐치볼을 하기 전부터 이미 약속을 했었다. 운동을 하고 나면 바로 씻기로 말이다.
그런데 아이는 갑자기 “아빠 먼저 씻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장난처럼 들렸다. 그래서 나도 웃으며 좋게 이야기했다.
“우리 아까 약속했잖아. 운동했으니까 먼저 씻자.”
하지만 아이는 점점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씻기 싫다고 말하며 계속 나부터 씻으라고 했다. 몇 번을 좋게 이야기해도 같은 말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는데 순간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감정이 터진 순간
그러자 아이는 갑자기 입고 있던 옷을 바닥으로 팍 던졌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나 역시 감정이 올라왔다.
“어른 앞에서 옷을 그렇게 던지는 거 아니야.”
결국 나는 아이를 혼내게 되었다. 앞으로는 그런 행동을 하지 말라고, 화가 난다고 해서 물건을 던지는 행동은 올바르지 않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순간 집 안의 공기가 조용해졌다.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지만
나는 늘 친구 같은 아빠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 아이와 몸으로 놀아주고, 대화를 많이 하고, 함께 웃으며 추억을 만들고 싶다. 그래서 가능하면 아이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려 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려 노력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오냐오냐” 하며 키우고 싶지는 않다. 부모로서 아이가 올바르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지도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행동은 잘못되었다고 알려주어야 하고, 감정 표현에도 배워야 할 방향이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도 감정을 배우는 중이다
다행히 우리 아이는 평소에는 말을 참 잘 듣는 편이다. 그래서 크게 혼낼 일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있다. 정말 이건 아니다 싶다고 느껴지는 순간들 말이다. 그날도 내게는 그런 순간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또 다른 생각도 들었다.
“이제는 정말 자기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하는구나.”
예전에는 그저 어리기만 한 아이 같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감정을 더 분명하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좋으면 좋다고 말하고, 싫으면 싫다고 표현하고, 서운하면 짜증도 내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날 아이가 옷을 던진 행동도, 아직 서툴지만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 중 하나였는지도 모른다.
냉랭해진 밤의 공기
아이를 씻기고, 나도 씻은 뒤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평소 같으면 장난을 치며 웃다가 잠들곤 했는데, 그날은 어딘가 공기가 조용했다.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아이를 재우고 방을 나왔다. 그리고 잠든 아이를 다시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참 신기하다. 방금 전까지 그렇게 투정을 부리던 아이도 잠들고 나면 다시 천사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괜히 마음이 약해진다.
“내가 너무 혼냈나.”
그런 생각도 잠시 스쳐 지나갔다.
부모라는 역할
하지만 여전히 나는 아이에게 필요한 순간에는 싫은 이야기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랑만으로는 부족하고, 때로는 올바른 방향을 알려주는 역할도 부모의 몫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과정 속에서 늘 고민하게 된다. 어디까지 단호해야 하는지, 어디까지 기다려주어야 하는지, 아이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말이다. 아마 부모가 된다는 것은 그 중간 지점을 평생 배워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부모도 함께 자라간다
생각해보면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부모 역시 아이를 통해 함께 자라고 있는 중인지 모른다.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려 애쓰고, 내 감정을 돌아보게 되고, 더 나은 방식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들 속에서 부모 또한 조금씩 성장해간다. 아이를 통해 삶을 다시 배우게 되는 순간들이 분명 존재한다.
함께 생각해볼 질문
나는 아이의 행동만 바라보고 있는가,
아니면 그 행동 뒤에 숨겨진 감정까지 바라보려 하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사랑과 훈육 사이에서 어떤 부모로 살아가고 싶은가.
결국 사랑하기 때문에 고민한다
그날 밤 나는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생각했다. 좋은 아빠가 된다는 것은 늘 웃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과 지도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어쩌면 부모의 진심은 완벽함이 아니라, 아이를 더 잘 이해하려 애쓰는 그 마음 안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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