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이름에 대한 상식
요즈음은 契(글; 소위 한자)을 배척하고 소위 한글전용이 일반화되어
書名(서명)이라는 말도 거의 쓰지 않게 된 듯하다.
젊은이들이 얼른 알아듣게 하려면 ‘책 이름’이라고 해야
빨리 이해되는 세상이 되었다.
그렇더라도 필자는 ‘책 이름’과 ‘서명’을
왔다갔다 할 수 있음에 양해를 구하고 시작해야겠다.
어느 저자라도 글을 쓰려면 서명을 염두에 두고 시작할 것이다.
즉 책 이름은 그 책을 쓰려는 목적지를 가리키는 좌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전체 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흔히 기승전결로 대표되는 흐름에 따라 章(장)과 節(절)도 나누고,
구성하는 갈래를 따라서 소제목을 다양하게
붙여가며 완성도를 높이게 마련이다.
또 그 책을 써 내려가다 지향하는
목적이 흔들리거나
더 좋은 목적이 보인다면 서명도 다시 생각하여 바꾸게 마련이다.
인류가 말을 글로 표현하고 알리는 수단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며,
그 글이 표현되는 방법만이 아니라
전달하는 수단은 문명의 발달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변천되었다.
암각화로부터 점토판 등을 거쳐 종이에 인쇄하는 형태까지,
요즈음은 전자책이 보편화되지만,
현대문명이 사라지면 재생 수단 없이는 판독조차 불가능하니
보존성 면에서는 암각화나 종이책보다 오히려 취약하다.
인쇄·출판을 시작한 인류는 단 한 권만 내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책이 많아지면서 그 책이 어떤 내용인지 알리고
알아보게 만드는 이름 또한 중요하게 되었다.
더욱이 모든 사람이 책을 소지할 수 없게 되어,
책을 보존하며 다중이 읽을 수 있게 하는 도서관이 생겼고,
쉽게 책을 찾을 수 있도록 만드는 규칙도 제정되었다.
책이 많은 나라: 고리
우리나라는 인쇄술, 특히 금속활자를 세계 최초로
발달시킨 것으로도 명성이 높지만,
송나라 사신의 일원이었던 서긍이 귀국하여 남긴
고리도경 권40 同文(동문) 편에
~ 詢知臨川閣藏書 至數萬卷, 又有淸燕閣 亦實以經史子集四部之書. ~ 下而閭閻陋巷. 間經館書社 三兩相望. 其民之子弟未昏者 則群居而從師授經. ~ 下逮卒伍童稺。亦從鄕先生學. ~
물어보아서 알게 되었지만, 임천각에는 장서가 수만 권에 이르고, 또 청연각이 있는데 역시 경·사·자·집4부의 책으로 채워져 있다고 한다. ~ 아래로는 여염집 거리에 경관과 서사가 즐비하다. 그 백성들의 자제로 혼인하지 않은 자들이 함께 살면서 스승을 좇아 경서를 익혔다. ~ 아래로 평민의 어린아이들에 이르기까지도 鄕先生(향선생; 고장 마을의 글 가르치는 선생)에게 글을 배운다. ~
또 고리사 권10 선종8년8월 병오일 기사에
丙午 李資義等還自宋, 奏云, "帝聞我國書籍多好本, 命館伴, 書所求書目錄, 授之乃曰, '雖有卷第不足者, 亦須傳寫附來.' "『百篇尙書』·『荀爽周易』十卷·『京房易』十卷~
병오 송나라에서 이자의 등이 돌아와 아뢰기를, "황제께서 우리나라에 좋은 판본 책이 많다는 말을 듣고는, 접대 담당 관반원에게 지시하여 구하려는 책의 목록을 써 주었습니다. 그것을 주며 말씀하시기를, '비록 권이 빠진 것이 있더라도 꼭 베껴서 보내라.'고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백편상서, 순상주역10권, 경방주역10권, ~
가 있는데,
구하려는 책의 이름(전문가들은 種<종>이라는 말을 사용)이 128종,
권수는 무려 4,874권으로
경, 사, 醫(의) 등 모든 분야의 책을 망라하였다.
이 기사에 담긴 서명과 수량은 고리가
거대한 국가였음을 보여주는 간접적이지만 강력한 증거다.
서명을 결정하는 원칙
앞의 ‘책이 많은 나라: 고리’라는 소제목 아래,
굳이 고리도경과 고리사의 일부 내용을 인용하며
고리라는 나라가 책이 많았음을 밝히는 이유가 있다.
서명을 결정하는 원칙이 우리나라에서 정하여진 것이 아니라
고서적 자산이 많지 못한 외국에서 정하여진 원칙이라,
우리 옛 문헌에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도서관과 연구기관에서 책·논문·고문헌·전자자료 등의 문헌 정보를
체계적(컴퓨터)으로 정리하고 교환하기 위한 우리나라 표준 규칙은
1983년 국립중앙도서관이 “한국문헌자동화목록기술규칙”으로 처음 제정하였다.
이 규칙이 우리나라가 독자적으로 작성한 것이 아니고,
1970년대 후반 미국 국회도서관이 개발한
LC MARC(훗날 USMARC로 발전)를
실험용 테이프로 받아 사용이 시작된 것이다.
미국도 독립적이 아니었다.
1969부터 ‘국제목록전문가회의(IMCE)’에서의 합의되어
국제표준 ISBD가 1971년 국제도서관연맹에 의하여 제정되어
1983년 우리나라 규칙에 흡수되었다.
이 규칙 속에 고문헌의 서명을 결정하는 원칙도 포함시켰을 터인데,
최우선으로 기준 삼는 정보가 적혀 있는 부분을 ‘으뜸정보원’이라고 말한다.
서명을 결정하기 위하여 ‘가장 우선되는 정보출처’라는 뜻을 갖는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이러한 국제 흐름에서 예외일 수 없지만,
우리나라는 이미 앞서 인용한 바와같이
어마어마한 양의 서적을 발행하던 나라일 뿐 아니라,
동양의 문화체계가 서양과 다르다는 사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였음이 삼국사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책’과 ‘권’의 정의
‘책’과 ‘권(卷)’은 현대 한국어에서는
보통 ‘책 한 권’처럼 거의 같은 뜻으로 쓰이지만,
옛날에는 ‘冊(책)’이 제본하여 하나로 묶었을 때 사용하고,
‘권(卷)’은 그 안의 내용을 구분하는 단위
곧 오늘날의 章(장)과 같은 말로 사용했다.
다시 쉽게 설명하자면 ‘권’이란 ‘내용 단위’,
‘책’은 제본된 ‘묶음 단위’다.
‘권’이란 원래 죽간의 두루마리를 세는 단위에서 출발하였고,
여러 ‘권’을 모아 ‘1책’이라고 부르는 식이었다.
따라서 삼국사는 50권인데,
권마다 부피를 고려하여 옛날에는 9책이 일반적이었다.
요즈음 삼국사를 번역한 책은 글자의 숫자는 늘었어도
글자를 작게 인쇄하므로 1책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활자가 작은 대신 주석(부가 설명)을 많이 붙여서
부피가 늘어나므로 보통 상하 2책으로 만들게 되었다.
책과 권을 확실하게 이해하기 위하여 삼국사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면
1책/권1~5, 2책/권6~11, 3책/권12~19,
4책/권20~26, 5책/권27~29, 6책/권30~31,
7책/권32~37, 8책/권38~44, 9책/권45~50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자료에서 인용)
으뜸정보원
문화재청에 의하면 고서 및 고문서 조사편람 2009에서
으뜸정보원의 순위는
1순위가 卷首題(권수제), 2순위가 標題(표제),
3순위로 標紙題(표지제), 4순위가 裏題(이제),
5순위로 版心題(판심제)를 적용한다고 하는데,
이 원칙을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없다는 문제가 일부 고서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동양 사서, 특히 우리나라 사서는
국가가 병립하였을 시기가 있거나,
사서를 편찬하는 편찬자가 체계를 달리하여 책을 펴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예컨대 삼국지의 경우는 위촉오의 세 나라였으므로,
표지는 삼국지로 하지만,
위나라의 경우에는 권수제를 “魏志卷一(위지권1)”,
촉나라는 “蜀志卷一(촉지권일)”로 하였다.
후대에 다시 출판하는 주체에 따라 “魏書一 三國志一(위지일 삼국지일)”로
출판한 경우도 있었던 듯하다.
고리사의 경우는 병립하지 않았음에도
“世家卷第一 高麗史一(세가권제일 고리사일)”,
“志卷第三 高麗史四十九(지군제삼 고리사사십구)”와 같이 되어 있다.
따라서 권수제가 절대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면,
삼국지의 경우는 삼국지라는 표제는 사용이 안 되어,
‘위지’, ‘촉지’, ‘오지’라고 각각 분리하여 불러야 하는 모순이 발생되며,
고리사의 경우라면 ‘세가’, ‘지’, ‘열전’으로만 서명을 정해야 하니
‘고리사’라는 서명은 증발해 버리는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삼국사’가 가장 특이하다.
표지에는 ‘삼국사’이고, 책을 열어 안으로 들어가면
“三國史記卷第00(삼국사기권제00)”이라고 하여
다른 사서에서는 볼 수 없는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후대 사람들이 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 틈을 준 듯하다.
그러나 너무도 명백하게 편찬의 명을 받은
김부식이 임무를 완성하고 완성본과 함께
보고서를 써 올린 글에
‘삼국사’임을 명시하고 있고,
고리사에 확실한 기록도 남아있다.
권수제에 ‘기’라는 표기는 서명으로 붙인 것이 아니라
‘기록하는’이라는 뜻을 나타낸 動詞(동사)라 해석된다.
이제 삼국사냐 삼국사기냐 자세하게
다음 글에서 다시 다루어 보기로 하고
오늘은 지면관계상 제목의 종류를 풀이하고 마치려 한다.
문화재청의 고서용 으뜸정보원 순위
이제 앞에서 문화재청이 정한 으뜸정보원 순위의
합리성을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1순위가 卷首題(권수제), 2순위가 標題(표제),
3순위로 標紙題(표지제), 4순위가 裏題(이제),
5순위로 版心題(판심제)를 적용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비슷한 말도 있어 난해하여 풀이가 필요하다.
권수제
권수제란 각각의 권마다 다른 내용이라면
그 내용에 알맞은 제목을 권마다 따로 붙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만약 삼국지처럼 65권의 문헌인데,
권마다 다른 내용이라면 결국 표제와 다른
65개 다른 이름이 주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는65권 모두 이름을 따로 갖지 않고,
위지35권, 촉지15권, 오지20권으로 나뉘어 있다.
그런 삼국지가 우리나라에서 발행된다면
권수제를1순위라 했으니,
삼국지라 하지 말고 위서로 해야 한다.
그렇다면 촉지와 오지는 버려야 하거나
각각 다른 서적이 되어야 하니
삼국지의 역사를 쓰려는 목적이 사라져 버리게 되니 합리성이 없다.
권수제 우선 원칙은,
책이 귀해 돌려 보다 표지가 떨어진 경우에나 통하는 궁여지책이다.
예컨대 삼국사의 성암본은
표지도 없고 완질이 남아있지도 않은 경우이므로
만약 삼국지도 옥산서원본 등이 없었다면
어쩔 수 없이 권수제를 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문헌을 항상 복수로 발행하던
우리나라에는 처음부터 적용될 수 없는 원칙이었다.
표제
표제는 해당 저작물의 공식적이고 고유한 이름을 말한다.
책의 본문이 시작되기 전 가장 앞에 있으면서
그 문헌의 이름, 저자, 출판사 등을 한눈에 보여주는 독립된 면을 말한다.
그런데 2위로 밀려나 있다.
왜 이러한 규칙이 만들어졌을까?
표지에는 관련 작업이 계속적으로 실시되어 이미 그 이름이 고착되었으나,
실질적으로는 독립적으로 작업이 이루어져
그 특징을 밝혀야 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예컨대 겉표지에는 ‘2025년도 하반기 문화재 발굴보고서’이지만
그 다음 면(표제면)에 ‘풍납토성 서성벽 일대 정밀발굴 조사보고서-3차’라면
그야말로 표제면이 실질 내용을 드러내는 제목이어서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거나 반대하지 못할 것이다.
표지제
표지제의 표지는 겉면을 말한다.
앞에서 예를 든 경우라면 겉표지는
참조의 정도에 머무르는 정도이므로
경우에 따라 3순위도 과할 수 있다.
표지에 적힌 그 이름으로 도서관 등에서 검색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裏題(이제)
표지 뒷면(안면)에 적힌 제목을 말한다.
표제면의 뒷면이나,
책의 표지를 넘긴 속지 등에 인쇄된 서명을 말한다.
개화기 때부터 표지에 시선을 끌기 위한 글씨나 그림 등으로 채우고,
표지를 넘긴 그 뒷면에 정식 서명을 인쇄한 경우에 해당한다.
판심제
오늘날에는 없고, 고서에만 해당된다.
옛날 얇은 한지에 인쇄하여 뒤로 접어서 묶어 책을 만들었는데,
접히는 부분에 작게 새겨넣은 서명을 뜻한다.
오늘날에는 판심제 대신에 상단이나 하단에
책이름, 또는 책이름과 장의 제목을 반복하는
心行題(심행제, running title)로 바뀌었다.
이제 서명을 결정하는 원칙에 대한 기초가 마련되었다.
다음 편에 이 지식을 바탕으로 삼국사를 논하여 보기로 한다.
국보로 올려놓고 서명조차 올바로 부르지 못한다면
국격의 문제가 되므로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자들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