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촌 원유 수송의 동맥, 호르무즈 해협 위에 정박한 유조선들의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다. 미국과 이란이 88일 넘게 이어온 전쟁의 매듭을 풀기 위한 양해각서(MoU) 협상이 막바지 진통을 겪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합의가 거의 마무리됐다고 선언했으나, 이란은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며 신중한 반응을 내놓았다. 우라늄 농축 재고, 동결 자산 60억 달러, 그리고 해협 통제권이라는 세 갈래 매듭을 누가 먼저 풀 것인가. 세계는 지금, 한 통의 문서가 가져올 평화의 무게를 가늠하고 있다.
왜, 어떻게 협상 테이블이 차려졌나
이번 협상의 출발점은 2026년 2월 28일이다. 그날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 핵 시설과 최고지도자 거처에 대한 동시다발 공격을 감행했고,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하면서 그의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최고지도자직을 승계했다. 이후 이란혁명수비대(IRGC)는 3월 2일 호르무즈 해협을 "비우호국"에 폐쇄한다고 선언했고, 미국은 4월 13일 이란 항만에 대한 해상봉쇄로 응수했다. 전 세계 해상 원유 수송의 20%가 통과하는 이 좁은 바닷길이 막히자, 유가는 폭등했고 미국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5달러에 육박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양측 모두 출구가 필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켄터키주 공화당 토머스 매시 하원의원 같은 자당 의원들로부터도 "지역 농가가 비료를 못 사는 상황"이라는 압박을 받아왔다. 이란 역시 88일에 걸친 인터넷 전면 차단과 일일 3,570만 달러의 경제 손실 속에 협상장으로 끌려 나올 수밖에 없었다.
무엇을, 누가 협상하나
협상의 뼈대는 양해각서다. 1단계로 호르무즈 해협 재개통과 미국 해상봉쇄 해제가 핵심이며, 이후 30~60일에 걸쳐 핵 문제 본격 협상이 이어진다. 이란 반관영 타스님 통신에 따르면 30일 이내 미국의 해상봉쇄가 완전히 해제되며, 이란 동결 자산 일부도 1단계에서 풀린다. 다만 이란이 카타르에 묶여 있는 약 60억 달러 자금의 해제를 선결 조건으로 요구하는 데 대해 미국은 공식 확약을 거부하고 있다.
미국 측 협상단은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 특사, 그리고 대통령의 사위 자레드 쿠슈너 고문이 주도한다. 이란 측은 외무부 대변인 에스마일 바가에이가 공식 입장을 대변한다. 중재자 역할에는 파키스탄, 오만, 카타르가 나섰으며, 4월 22일 이슬라마바드 거리에는 파키스탄의 중재 노력을 알리는 포스터가 내걸리기도 했다.
쟁점은 첨예하다. 미국은 이란이 고농축 우라늄을 외부로 반출하고 핵무기 보유를 영구히 포기할 것을 요구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이 제안한 20년간 농축 중단을, 이란은 5년 유예로 맞받았고 미국은 이를 거부했다. 농축 우라늄 처리 방안은 2단계 협상으로 미뤄졌다. 또한 미사일 프로그램 문제는 사우디·UAE 등 걸프 국가들의 거센 우려에도 불구하고 최근 논의에서 빠진 분위기다.
어디서, 언제 결판나는가
협상 무대는 한곳이 아니다. 오만 수도 무스카트에서는 양국 실무진의 비공식 접촉이 이어지고, 이슬라마바드에서는 파키스탄 군 정보부의 비공개 채널이 가동되고 있다. 5월 23일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파키스탄, 터키, 이집트, 요르단, 바레인 및 이스라엘 지도자들과 잇따라 통화한 뒤 자신의 SNS에 합의가 거의 마무리됐다고 적었다.
그러나 같은 날 이란 파르스 통신은 트럼프의 발표를 불완전하고 현실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평가절하했다. 이란 측은 해협 관리권이 미국이 아닌 오만과 조율할 사안이며, 군함 통과는 합의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합의문이 작성되더라도 최종 서명은 트럼프 대통령과 모즈타바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비준을 거쳐야 한다. 미국 고위관계자는 “먼지(농축 우라늄)가 없으면 달러도 없다. 해협이 열리는 만큼 봉쇄가 풀린다"라는 비례적 검증 원칙을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