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멩이를 옮기는 사람 19

19. 문을 열어 주는 사람

돌멩이를 옮기는 사람 19

 

 

 

19. 문을 열어 주는 사람

 

 

그날 아침은 일찍 왔다.

 

영수는 해가 뜨기 전에 눈을 떴다. 잠이 깊이 들지 않았던 것 같았다.  엄마와 나눈 이야기들이 밤새 마음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옳은 일이기 때문에 한다는 말. 아직 모른다는 말. 두려워도 움직이는 것이 있다는 것.

 

그 말들이 마음 안에서 아직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엄마는 아직 자고 있었다. 영수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은 아직 어두웠다. 겨울 새벽이었다. 하지만 병원은 아침 진료 전에도 불이 켜져 있었다. 영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외투를 걸치고 문을 열었다. 골목은 조용했다. 눈이 조금 더 쌓여 있었다. 새벽에 내린 것이었다.

 

발자국을 내며 걸었다. 눈 위에 남는 자신의 발자국을 보았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길 위에 자신이 처음으로 흔적을 남기는 것이었다.

 

 

병원 앞 골목에 다다랐을 때였다.

 

영수는 멈추었다.

 

병원 문 앞에 누군가 서 있었다.

 

작은 사람이었다. 아이였다. 남자아이 같았다. 영수보다 조금 어려 보였다. 외투를 입고 있었지만 얇았다. 앞섶이 제대로 여며지지 않았다. 손은 주머니 속에 넣고 있었다.

 

그 아이는 문 앞에 서 있었다. 손잡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영수는 그 뒷모습을 보는 순간, 가슴이 조여 왔다.

 

저 아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들어가야 하는데, 들어갈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것이었다. 손을 뻗으려다 멈추는 것이었다. 그 문이 자신에게 열릴 것인지, 열리지 않을 것인지. 두려움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영수는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다가가야 할까. 아니면 지나쳐야 할까.

 

앞의 실수가 떠올랐다. 두 사람 사이의 일에 끼어들었다가 차갑게 거절당했던 것. 그때 남자가 말했다. 도움이 필요한지 아닌지를 우리가 먼저 정할 수 없다고.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저 아이는 혼자였다. 두 사람 사이가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이 필요한지는 명확했다. 문을 열어 줄 사람이 필요했다.

 

영수는 걸었다.

 

아이 가까이 다가가자, 발걸음 소리에 아이가 돌아보았다.

 

눈이 빨갰다. 울었거나, 추위 때문이거나. 아마 둘 다였을 것이었다. 영수를 보고 잠깐 굳었다. 영수가 어른이 아니라 아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영수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들어가야 해?"

 

아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들어갈까?"

 

아이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조금 더 빠르게.

 

 

영수는 손잡이를 잡았다.

 

차가웠다. 이제는 그냥 겨울의 쇠였다. 두렵지 않았다.

 

문을 열었다.

 

따뜻한 공기가 밖으로 흘러나왔다. 소독약 냄새, 낡은 나무 냄새, 사람의 숨결이 오래 머문 냄새. 그 냄새들이 새벽 공기와 만났다.

 

영수는 옆으로 비켜서며 말했다.

 

"들어가."

 

아이는 잠시 그 문 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 발짝 내디뎠다. 문턱을 넘었다.

 

영수도 따라 들어갔다.

 

복도는 아침 준비가 시작되고 있었다. 간호사 한 명이 물통을 들고 지나갔다. 영수를 보더니 말했다.

 

"일찍 왔네."

 

"네. 이 아이가 들어와야 해서요."

 

간호사는 아이를 보았다. 그리고 무릎을 조금 굽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었다.

 

"어디가 아파?"

 

아이는 영수를 한 번 바라보았다. 영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도 된다는 뜻이었다.

 

아이는 말했다.

 

"엄마가요."

 

 

영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눈을 감았다.

 

엄마가요.

 

그 두 글자가, 자신의 첫 번째 말과 같았다. 처음 이 병원에 왔을 때, 영수도 그 말을 했다. 아니, 끝까지 말하지 못하고 목이 막혔었다. 그런데 저 아이는 말했다. 두 글자를.

 

영수는 눈을 떴다.

 

간호사가 아이를 안내하고 있었다. 영수는 그 옆에 서 있었다. 더 이상 해야 할 일이 없었다. 아이는 이제 이 안에서 돌봄을 받을 것이었다. 문이 열렸으니까.

 

영수는 복도 가장자리로 물러났다.

 

아이가 간호사를 따라 안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 뒷모습이 조금 작았다. 그리고 조금 떨고 있었다. 하지만 걷고 있었다. 멈추지 않고.

 

영수는 그 걸음을 오래 바라보았다.

 

 

남자가 복도에서 오고 있었다.

 

일찍부터 진료를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영수를 보더니 멈추었다.

 

"일찍 왔구나."

 

"네."

 

남자는 영수의 눈빛을 살폈다. 그리고 아이가 걸어간 방향을 보았다.

 

"같이 왔어?"

 

"아니요. 문 앞에 혼자 서 있었어요."

 

남자는 영수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같이 들어왔어요."

 

남자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네가 열었구나."

 

영수는 그 말을 들었다. 문을 열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 말은 그것보다 더 큰 것처럼 들렸다.

 

‘네가 열었구나.’

 

 

영수는 그 말 안에서 무언가를 느꼈다.

 

남자가 물었었다. 왜 오고 싶은지 생각해 오라고. 그 질문을 품고 다닌 지 꽤 됐다.  

 

그리고 오늘 아침, 아무 계획도 없이 새벽에 걸어왔다가, 문 앞에 서 있는 아이를 보고 문을 열었다.

 

그 순간이 답이었다.

 

말로 설명할 수 있는 답이 아니었다. 이유를 적을 수 있는 답이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되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두려움도 없었고, 계산도 없었다. 그냥, 저 아이에게 문이 열려야 한다고 느꼈고, 자신이 열 수 있었고, 열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골목 끝 불빛을 바라보며 걷기 시작했던 아이가, 이제 그 문을 다른 사람을 위해 열고 있었다. 받는 쪽에서 주는 쪽으로. 무서워하는 쪽에서 열어 주는 쪽으로.

 

그 이동이 언제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느 하루에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물 한 그릇, 빗자루질,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 실패, 엄마와의 대화. 그 모든 것이 조금씩 쌓여 이 아침에 도달한 것이었다.

 

 

영수는 복도를 걸었다.

 

물통을 확인했다. 채워야 할 것이 있었다. 채웠다. 바닥에 떨어진 것이 있었다. 주웠다. 복도 끝 창문 커튼이 한쪽으로 쏠려 있었다. 정리했다.

 

그 작은 일들이 이제 영수에게는 자연스러웠다. 처음에는 하나하나가 선택이었다. 해야 하나, 해도 되나, 잘 하고 있나. 그런데 지금은 그냥 했다. 보이면 했다. 할 수 있으면 했다.

 

그게 언제부터였는지는 영수 자신도 몰랐다.

 

오전 중반쯤, 간호사가 영수를 찾았다.

 

"아까 그 아이 알아?"

 

"아니요. 오늘 처음 봤어요."

 

간호사는 잠시 영수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같이 들어와 줘서 잘 됐어. 혼자 못 들어올 뻔했더라."

 

영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후 물었다.

 

"그 아이 엄마는요?"

 

"지금 진료 받고 계셔."

 

그것으로 충분했다. 문이 열렸고, 안에 들어왔고, 진료를 받고 있었다. 그 이상은 영수가 알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일어나는 데에 영수가 있었다는 것.

 

그 사실이,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날 돌아오는 길이었다.

 

골목을 걸으며 영수는 생각했다.

 

오늘 자신은 일을 조금 한 것인지도 몰랐다. 돌멩이 하나를 옮기는 것. 크지 않고, 눈에 띄지 않고,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일. 하지만 그 돌멩이가 옮겨지면, 그 자리에 다음 사람이 지나갈 수 있었다.

 

아침에 문을 열어 준 것도 그런 일이었다.

 

문이 열렸고, 아이가 들어갔고, 엄마가 진료를 받았다. 영수가 한 것은 문 하나를 여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문 하나가 오늘 그 아이에게는 전부였을 것이었다.

 

겨울 하늘이 파랬다. 바람이 조금 불었다. 영수는 외투 앞섶을 여미었다.

 

집에 돌아가면 엄마가 있을 것이었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진 엄마가. 그리고 내일이 오면, 또 아침이 올 것이었다. 그 아침에 다시 병원으로 걸어갈 것이었다.

 

왜 가는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았다.

 

문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열어 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 답이 말로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늘 아침에 갑자기 생긴 답이 아니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날이 쌓여 나온 답이었다.

 

골목이 끝나고 집 문이 보였다.

 

영수는 그 문을 열었다.

 

따뜻한 공기가 나왔다. 엄마가 있는 공기였다.

 

영수는 안으로 들어갔다.

 

삶을 바꾸는 동화 신문 기자 kjh0788@naver.com
작성 2026.05.27 09:07 수정 2026.05.27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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