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다. 아이들도 나도 개나 고양이를 좋아하긴 하지만, 한 생명을 책임지고 살뜰히 챙길 만한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가끔 아이들이 친구들에게 들었다며 반려동물 키우는 이야기를 전하곤 하는데, 어떤 때는 개나 고양이가 먹는 사료나 간식 비용이 사람이 먹는 음식보다 비싸다는 말에 적잖은 충격을 받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나는 철저히 시대에 뒤떨어진 구닥다리일지도 모른다. 내 기억 속 동물이란 결국 '가축(家畜)'의 범주에 있었고, 사람이 먹다 남은 밥이나 따로 챙겨주는 거친 음식으로도 잘 자라던 어릴 적 우리 집 마당 한 편에 키웠던 강아지가 기준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사치스러운 반려동물 문화를 보며 문득 맹자(孟子)의 한 구절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어 나가는데, 위정자들은 개나 돼지가 사람이 먹을 양식을 먹고 있어도 단속할 줄 모른다며 질타했던 문장, 바로 ‘구치식인식이부지검(狗彘食人食而不知檢)’이다.
물론 지금의 대한민국에 당장 굶어 죽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먹을 것이 넘쳐나 버려지는 음식물이 부지기수인 풍요의 시대다. 그러나 시선을 우리 사회 내부에서 지구촌 전체로 조금만 돌려보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진다. 여전히 세계 한편에서는 생존의 한계선에 내몰려 굶어 죽어가는 이들이 수없이 많다.
전쟁과 봉쇄로 고통 받는 가자지구의 현실이 대표적이다. 최근 국경없는의사회(MSF)나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같은 구호 단체들이 필수적인 의료 지원과 구호물자를 보내려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지속되는 교전과 이스라엘군의 접근 제한으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심지어 해상 봉쇄를 돌파하려던 국제 구호선단의 활동가들(한국인 2명을 포함한 430여 명)이 체포되어 추방당하는 작금의 사태는, 인간이 인간을 구원하려는 최소한의 통로마저 막혀버린 비극적인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맹자는 양혜왕(梁惠王)이 종(鐘)을 만들 때 제물로 끌려가는 소를 가엾게 여겨 양으로 바꾸라고 명했을 때, 그 마음을 높이 평가했다. 눈앞의 소나 보이지 않는 양이나 불쌍하긴 매한가지지만, 눈앞의 고통을 차마 보지 못하는 그 '가엾게 여기는 마음(惻隱之心-측은지심)'이야말로 정치를 바꾸고 세상을 바꿀 시작점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키우는 반려동물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귀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 따뜻한 시선을 내 집 안, 내 울타리 안에만 가두어두어서는 안 된다. 굶주림과 포화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어가는 가자지구의 이웃들, 그리고 그들을 돕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구호 활동가들의 고독한 싸움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조금 더 넓게 확장해야 할 때다. 그것이 풍요의 시대를 사는 우리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인류애이자, 고전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준엄한 질문이 아닐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