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5월의 베이징. 화려한 만찬이 끝난 뒤 두 나라가 손에 쥔 종이 한 장씩이, 한반도의 운명을 정반대 방향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8년 만의 방중 직후, 백악관은 시진핑과 북한 비핵화에 뜻을 같이했다고 자신만만한 팩트 시트를 띄웠다. 그러나 같은 회담을 마친 중국 외교부의 답장은 정중하지만 차갑게 식어 있다. 정상의 악수보다 그 손이 놓인 종이 위 한 줄이 진실에 더 가깝다는 외교의 오래된 격언이, 지금, 이 순간 한반도 7천만 백성의 안위 위에 무겁게 내려앉는다. 그 두 종이 사이를 들여다본다.
21발 예포가 가라앉은 자리에 놓인 팩트 시트
2026년 5월 14·15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7년 이후 처음으로 베이징 땅을 다시 밟았다. 톈안먼 광장에서 울려 퍼진 21발 예포, 인민대회당의 황금빛 만찬, 시진핑 주석이 "양국 17억 인민의 안녕"을 위해 들어 올린 잔, 그리고 트럼프가 답례로 인용한 공자의 옛말까지. 화면 속 풍경은 역사적이라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그 만찬의 여운이 채 식기도 전, 백악관은 일요일 자 팩트 시트를 던졌다. 두 정상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공동 목표로 재확인했고, 이란이 핵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데에도,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열자는 데에도 손뼉을 마주쳤다는 내용이었다. 보잉 200대 구매, 연 170억 달러 농산물 거래, 무역·투자 조정 위원회 신설까지 화룡점정처럼 박혔다. 워싱턴은 환호했고, 트럼프는 자신 있게 역사적 회담이었다고 외쳤다.
같은 식탁, 두 갈래로 쓰인 발표문
그러나 중국 외교부가 펜을 들었을 때, 같은 회담은 전혀 다른 얼굴로 다시 적혔다. "중국은 이란과 한반도 핵 문제에 일관된 입장을 견지하며, 미국이 모든 당사자의 정당한 우려를 고려하고 평화적이고 신중한 대화와 협상에 임할 것을 요구한다"라는 짤막한 한 줄이 베이징이 내놓은 전부였다. '비핵화'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우연일 리 없다. 베이징은 지난해 11월 군축·비확산 백서에서도 수십 년 한결같이 적어 온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슬그머니 삭제했고, 지난주 한·중 정상회담 발표문에서도 같은 단어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외교 문서에서 단어 하나가 빠진다는 것은, 입장 자체가 옮겨 앉았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다. 한 식탁의 합의가, 두 종이 위에서 두 개의 진실로 갈라진다.
평양은 헌법에 핵을 새기고, 워싱턴 안에선 한숨이 새다
비행기에 오르며 트럼프는 김정은과 연락하고 있고, 그가 나를 정중히 대했다고 호기롭게 말했다. 그러나 워싱턴·서울·도쿄의 아시아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고개를 젓는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유권자에게 들려줄 '성공 신화'에 목마른 대통령이 존재하지 않는 합의를 선포해 온 전례가 짙기 때문이다. 정작 진짜 변수는 평양에 있다. 김정은 정권은 2023년 헌법에 핵보유국 지위를 못 박았고, 두 번째 우라늄 농축 시설까지 세상에 보란 듯이 공개했다.
브루킹스연구소는 북한이 이미 40~50기의 핵탄두를 보유했다고 추산하며, 지난 2월 9차 당대회에서 채택된 새 5개년 국방 계획은 지상·해상 발사 ICBM 개발과 핵 지휘통제 체계의 정교화를 명시한다. 정상회담 조건으로 '핵보유국 인정'을 선결 요구로 내건 상태다. 베이징도 같은 흐름이다. 북한을 완충지대로 끌어안고, 공식 문서에서 '제재'라는 두 글자를 수년째 외면해 왔다. 왕이 외교부장은 지난 4월 평양으로 직접 날아가 김정은·최선희와 마주 앉았고, 푸틴 러시아 대통령 곁에 선 김정은의 사진은 이미 국제 무대의 한 장면이 되었다.
한 글자가 핵보다 무거운 시대의 기도
세 나라가 한 식탁에 둘러앉아 서로 다른 메뉴를 부른다. 미국은 '비핵화'를 외치고, 중국은 '대화'를 읊고, 북한은 '인정'을 고집한다. 외교는 본디 단어 위에 운명을 얹는 일이라, 한반도 7천만 백성의 안위는 화려한 만찬보다 그 만찬 다음 날 발표문의 어휘 하나에 매여 있다. 오늘 밤 누군가는 백악관 팩트 시트를 읽으며 안도하고, 누군가는 베이징의 한 줄을 들여다보며 깊은 한숨을 내쉰다. 그 사이 평양은 또 한 발의 미사일을 조용히 만지작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