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 자락에 울려 퍼지는 무소유의 향기
서울 도봉구 도봉산 초입, 화려한 단청보다도 더 눈에 띄는 것은 이른 새벽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활기다. 그 중심에는 항상 낡은 승복을 입고 장화를 신은 정심 스님이 있다. 서원암의 주지인 정심 스님은 불교계에서 ‘일하는 스님’, ‘농사짓는 스님’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현대 불교가 대형화되고 화려해지는 추세 속에서도 서원암은 소박함을 유지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나눔의 규모는 결코 소박하지 않다. 정심 스님이 지난 40여 년간 실천해 온 자비행은 지역 사회 복지의 거대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서원암은 기도의 독경 소리 대신, 이웃에게 전해질 음식을 준비하는 칼질 소리와 왁자지껄한 신도들의 웃음소리로 수행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30년 넘게 이어진 ‘김장 대작전’, 그 땀방울의 기록
정심 스님의 나눔을 상징하는 단어는 단연 ‘김장’이다. 1986년, 작은 인연으로 시작된 김장 나눔은 이제 매년 2만 포기라는 경이적인 숫자로 성장했다. 대규모 식품 공장도 아닌 산사에서 이 정도 규모의 김장을 소화하는 것은 언뜻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스님은 이를 “신심(信心)과 땀이 만든 기적”이라고 말한다.
스님의 나눔이 특별한 이유는 그 ‘과정’에 있다. 대기업의 후원을 받아 물품을 전달하는 일반적인 방식과 달리, 정심 스님은 경기도 포천에 위치한 수련원에서 직접 농사를 짓는다. 봄에는 씨를 뿌리고, 여름의 뙤약볕 아래서 김매기를 하며, 가을이면 실하게 자란 배추와 무를 수확한다.
“남에게 얻어서 하는 봉사는 생색내기가 되기 쉽고, 후원이 끊기면 멈추기 마련이다. 우리가 직접 땀 흘려 가꾼 것으로 나누어야 받는 사람도 미안해하지 않고, 주는 우리도 진정한 수행이 된다”
정심 스님의 이러한 고집 덕분에 서원암 김치는 ‘명품’으로 통한다. 화학조미료 대신 직접 담근 매실액과 좋은 재료를 아낌없이 넣는다. 이렇게 담가진 김치는 도봉구뿐만 아니라 노원구, 의정부 지역의 홀몸 어르신, 소년소녀 가장, 그리고 형편이 어려운 시설들로 전달된다. 겨울철 찬바람이 불 때쯤 스님의 손길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이 김치는 단순한 반찬이 아니라, 겨울을 버텨낼 따뜻한 희망 그 자체다.
◆매주 화요일, 허기를 채우고 마음을 데우는 무료 급식
김장이 1년의 큰 잔치라면, 매주 화요일 서원암에서 열리는 무료 급식은 정심 스님이 지역 주민들과 맺은 20년 된 약속이다. 매주 화요일이면 서원암 마당은 인근 어르신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스님은 급식 메뉴 선정에도 직접 관여한다. 고령의 어르신들이 소화하기 편하면서도 영양가가 높은 식단을 고민한다. 단순히 끼니를 때우는 공간이 아니라, 외로운 어르신들이 모여 서로 안부를 묻고 정을 나누는 ‘사랑방’ 역할을 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무료 급식 현장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자식들도 찾아오지 않는 적막한 일주일 중에 화요일이 가장 기다려진다”며 “스님이 직접 잡아주시는 따뜻한 손길에서 부처님의 자비가 무엇인지 느낀다”고 전했다. 정심 스님은 배식판을 직접 들고 어르신들 사이를 누비며 불편한 곳은 없는지 살핀다. 스님에게 이 시간은 강단 위의 법문보다 더 깊은 울림을 주는 ‘현장의 법문’인 셈이다.
◆시대와 호흡하는 수행자, 유튜브로 여는 새로운 포교
정심 스님의 행보는 전통적인 산사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스님은 최근 유튜브 채널 ‘서원암 정심스님’을 통해 대중과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있다. 자칫 권위적일 수 있는 스님의 이미지를 탈피하여, 밭에서 배추를 갈아엎거나 신도들과 소탈하게 대화하는 모습 등을 브이로그(Vlog) 형식으로 공유한다.
유튜브를 시작한 이유에 대해 스님은 “불교가 산속에만 있어서는 안 된다”고 단호히 말한다. 젊은 세대들이 종교를 멀리하는 시대에, 그들이 있는 곳으로 직접 찾아가는 것이 수행자의 도리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스님의 영상에는 “부처님의 보시행을 실천하는 스님의 삶을 보고 감동했다”, “진정한 나눔이 무엇인지 배우고 간다”는 댓글이 줄을 잇는다.
또한, 스님은 생명 존중 사상을 실천하기 위해 방생 문화 개선에도 앞장서고 있다. 외래종을 무분별하게 방생하는 잘못된 관습 대신, 토착 어종인 누치 등을 방류하며 생태계 보호와 종교적 의식을 결합한 새로운 방생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환경 보호라는 시대적 과제와 불교적 가치를 조화시킨 사례로 평가받는다.
◆멈추지 않는 자비의 수레바퀴, 미래를 향해
정심 스님의 시선은 더 먼 미래와 더 넓은 곳을 향하고 있다. 최근에는 지역 내 아동학대 예방 사업과 청소년 장학금 지원에도 힘을 쏟고 있다. 노인 복지에서 시작된 스님의 관심이 미래 세대인 아이들에게로 확장된 것이다.
“내 손의 것을 비울 때 비로소 마음의 잔은 더 크게 빚어진다. 작은 조각 하나를 내어주고 온 세상의 밝은 빛을 되돌려 받으니, 참으로 풍요로운 갈음이 아닐 수 없다”
인터뷰 말미에 스님이 내보인 손은 거칠고 투박했다. 농사일과 부엌일로 다져진 그 손은 화려한 염주보다 더 성스러워 보였다. 정심 스님에게 수행이란 앉아서 하는 명상이 아니라, 이웃의 눈물을 닦아주고 배고픈 이에게 밥 한 술을 건네는 역동적인 움직임이었다.
도봉산의 정기를 품고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며, 스스로 등불이 되어 주변을 밝히는 정심 스님. 그의 헌신적인 삶은 각박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묵직한 질문과 명쾌한 해답을 동시에 던져주고 있다. 서원암의 문턱은 낮고, 스님의 자비는 깊다. 그가 뿌린 나눔의 씨앗은 이미 수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서 희망이라는 꽃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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