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보의 일히일비(7) - 잊을 수 없는 푸른 빛

태풍 속 사투, 허리까지 차오른 물길을 뚫고 향한 가족의 발걸음

220V 감전의 공포와 유혹적인 푸른 빛, 죽음의 문턱에서 들린 어머니의 절규

한 끗 차이로 엇갈린 생과 사, 고압선 사고 현장에서 마주한 기적 같은 생존

 

 

אוֹר (오르) - 빛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창 1:3) 


중학교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날의 일은 정말 한순간도 잊을 수가 없다.

 

태풍으로 인해 자동차도 다닐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할머니댁이 걱정돼서 부모님과 다녀오기로 했다. 동생은 어리다는 이유로 집에 남아 있었다. 할머니 댁은 걸어서 1시간 정도의 거리였는데, 거리는 온통 물난리였다. 물이 내 허리 정도까지 왔던 것 같다.

 

허리까지 오는 물을 뚫고 할머니댁으로 향했다. 불과 20~30여 분을 걸었을까. 그때부터 물이 많이 줄기 시작했다. 할머니 댁에 도착했을 때는 발목까지도 차지 않았다. 우리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데, 집까지 불과 2~300미터 정도 남은 OO슈퍼 앞에서 갑자기 무릎이 따끔거렸다. 뱀이 물었다고 생각하고는 '엄마, 뱀.. 뱀..'이라며 허겁지겁 달려가려 했는데,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때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앞으로 고꾸라진 후, 물속에 잠겨 들어가는 상황에서 저 앞에 아주 푸르고 편안한 빛이 보였다. 그쪽으로 쭈욱 빨려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물은 허리까지 밖에 오지 않았으나, 저 깊은 바닷속으로 빨려가는 그런 느낌이었다. 난 숨을 쉬지 않았지만, 갑갑하거나 아프거나 혹은 불편하지도 않았다. 그 때, '동보야!'라며 절규하듯 외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얼핏 들렸다. 한 번 더 들렸다. 그리고는 정신이 들었다.

 

그날, 난 뱀에게 물린 게 아니라 OO슈퍼 앞에 있던 자판기 때문에 220볼트에 감전이 됐던 것이다. 무릎에 상처가 있었기 때문에 무릎부터 뭔가 찌르는 듯 아파왔던 것이고, 그 푸른 빛은 전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왼쪽에 내가 있었고, 어머니가 가운데, 그리고 아버지가 오른쪽에 있었기에 어머니는 전기에 감전되자 양손으로 나와 아버지 옷을 필사적으로 부여잡고 '동보야!'를 외치며 죽을 힘을 다해 그곳을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이다.

 

감전으로부터 벗어나자마자 정신이 든 아버지는 내장까지 토해낼 듯 구역질을 하셨다. 감전으로 인해 아버지도 나처럼 푹 쓰러졌는데, 숨을 참지 못하고 그 똥물을 다 마셨다고 한다. 그렇게 정신을 차렸을 때, 길 건너편에서 두 명의 노란 우비를 입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 길 건너편으로 갔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하는 후회감이 밀려왔다. 그 때가 나에게 있어서는 첫 번째 생명연장이었다. 지금도 그 푸른 빛을 잊을 수가 없다. 심해의 고요함 속에서 마치 내게 손짓하는 듯 유혹하던 그 푸른 빛.

 

결국 우리 세 명은 집에 잘 도착했고, 안정을 취한 후 저녁 시간이 되어 TV를 켜고 뉴스를 봤다. 

 

그 날, 우리가 감전되었던 OO슈퍼 길 건너에서 태풍에 의해 끊어진 2만 볼트 고압선으로 인해 노란 우비를 입은 두 사람이 감전사 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허동보 목사(Rev. Huh Dongbo) | 수현교회(Suhyun Church)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AI시대, 히브리어로 답하다』 외

 

 

 

작성 2026.05.11 21:14 수정 2026.05.11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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