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2월, 알프스의 설원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전 세계인의 축제인 이곳에서 아시아의 두 스포츠 강국, 한국과 일본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단순히 메달 집계 현황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올림픽이라는 거대한 이벤트가 양국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 즉 '올림픽노믹스(Olympic-nomics)'의 성적표가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번 대회를 기점으로 스포츠 산업의 르네상스를 맞이한 반면, 한국은 '올림픽 특수'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싸늘한 경제적 반응에 직면했다.

설상(雪上)의 기적: 일본, 콘텐츠가 돈이 되다
일본 선수단이 머무는 밀라노 선수촌 인근과 주요 경기장 주변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다. 일본은 이번 대회에서 전통적인 효자 종목인 피겨 스케이팅뿐만 아니라 스노보드, 프리스타일 스키 등 설상 종목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이러한 성적은 즉각적인 경제 효과로 이어졌다. 특히 X세대와 Z세대를 아우르는 스노보드 스타들의 활약은 일본 내 겨울 스포츠 붐을 다시 일으키며 관련 장비 및 의류 매출을 전년 대비 40% 이상 끌어올렸다.
더 주목할 점은 일본 스포츠 브랜드의 약진이다. 아식스, 데상트, 골드윈 등 일본 토종 브랜드들은 자국 선수들의 활약을 등에 업고 유럽 시장 공략에 성공했다. 경기장 곳곳에서 일본 브랜드의 로고가 노출되고, 현지 팝업 스토어에는 유럽 젊은이들이 일본의 스키웨어를 사기 위해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일본은 올림픽을 단순한 국가 대항전이 아닌, 자국의 문화와 패션, 기술력을 판매하는 거대한 쇼케이스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오랜 기간 생활 체육 저변을 확대하고, 엘리트 체육과 산업을 연계해 온 일본 스포츠 정책의 승리라고 볼 수 있다.
빙상(氷上)의 고립: 한국, 방송 외면 속 '그들만의 리그'
반면 한국의 상황은 침울하다. 전통적인 메달 밭이었던 쇼트트랙과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고전하며 대회 초반부터 메달 레이스에서 밀려났다. 하지만 성적 부진보다 더 뼈아픈 것은 역대 최악의 '무관심'이다. '포스트 김연아' 시대의 확실한 스타 플레이어 부재가 1차적 원인이지만, 이를 더욱 악화시킨 것은 구조적인 방송 환경 문제였다.
이번 대회는 지상파 3사가 아닌 JTBC가 단독으로 중계권을 확보했다. 그러나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독점 중계 환경 속에서, 주요 언론들마저 올림픽 소식을 메인 뉴스에서 비중 있게 다루지 않으며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실제로 주요 일반 경기 시청률은 1~6%대, 사실상 제로에 가까운 수준에 머물렀다. 서울 시내에서 만난 다수의 시민은 "올림픽이 지금 열리고 있는지조차 몰랐다"는 냉담한 반응을 보일 정도였다.
이러한 철저한 무관심은 즉각적인 소비 위축으로 이어졌다. 통상 올림픽 기간에 특수를 누리던 치킨, 맥주 등 유통업계의 매출은 평년 수준을 밑돌고 있다. 거리 응원이나 대형 스크린이 설치된 광장은 찾아보기 힘들다. '빙상 강국'이라는 타이틀에만 의존해 온 한국 동계 스포츠가 저변 확대 실패와 방송 환경의 변화라는 악재를 만나, 올림픽이 주는 경제적 활력을 전혀 흡수하지 못하고 고립된 것이다.
기업 스폰서십의 명암: 공격적 투자 vs 지갑 닫기
기업들의 움직임에서도 양국의 온도 차는 확연하다. 일본 기업들은 엔저 현상에도 불구하고 밀라노 현지에 대규모 홍보관을 설치하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도요타, 파나소닉 등 글로벌 파트너뿐만 아니라 일본의 식음료, 게임 기업들까지 올림픽을 기회로 삼아 유럽 시장 확장에 나섰다. 일본 선수들의 메달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관련 기업의 주가가 들썩이는 등 주식 시장에서도 '올림픽 테마주'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 기업들은 '올림픽 지우기'에 나선 모양새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내수 부진을 이유로 대다수 기업이 올림픽 마케팅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현지에서 눈에 띄는 한국 기업의 마케팅 활동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국민적 관심이 저조하니 기업 입장에서도 굳이 큰 비용을 들여 광고할 유인이 사라진 것이다. '애국 마케팅'이 통하던 시대는 지났고, 매력적인 콘텐츠 없이는 기업의 지갑도 열리지 않는다는 냉혹한 현실을 이번 밀라노 올림픽이 증명하고 있다.
스포츠 산업의 미래: 인프라와 생태계의 차이
결국 이번 밀라노 올림픽이 보여준 것은 단순한 메달 색깔의 차이가 아니라 '스포츠 산업 생태계'의 격차다. 일본은 겨울 스포츠를 하나의 거대한 레저 산업으로 육성해 왔다. 홋카이도와 나가노의 스키장에는 전 세계 관광객이 몰려들고, 이는 다시 지역 경제 활성화와 관련 기업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이번 올림픽의 성공은 이러한 탄탄한 인프라 위에서 피어난 꽃이다.
한국은 여전히 스포츠를 '국위 선양'의 도구로만 바라보는 시각에 갇혀 있다. 엘리트 선수 육성에만 집중하고, 일반 대중이 즐기는 생활 체육으로서의 겨울 스포츠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하다. 스키장 이용객은 해마다 줄어들고, 관련 용품 시장은 해외 브랜드에 잠식당했다. 산업적 기반 없이 소수의 엘리트 선수에게만 의존하는 구조는 모래성과 같다. 선수가 부진하면 산업 전체가 흔들리는 현재의 취약한 구조로는 제2, 제3의 평창 특수를 기대하기 어렵다.
2026 밀라노 동계올림픽은 한국과 일본에 서로 다른 교훈을 남기고 있다. 일본은 스포츠가 어떻게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를 증명했고, 한국은 엘리트 체육 중심의 낡은 패러다임이 더 이상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제 한국도 관점을 바꿔야 한다. 메달 개수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스포츠를 통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하는 '산업적 접근'이 필요하다. 스타 플레이어 한 명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겨울 스포츠 문화를 만들고 관련 브랜드와 콘텐츠를 육성해야 한다. 밀라노의 설원에서 확인한 일본의 호황과 한국의 침묵, 이 극명한 대비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