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35년 전인 1990년대 초 문자 그대로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빈손으로 수출에 도전했던 어느 바보 같은 청년이 있었다. 수출하려면 당연히 수출 품목이 있어야 한다. 그는 어떤 품목이 좋을까를 고민하다가 당시 우리나라가 세계 5위의 석유화학 강국이라는 사실을 알고 레진(Synthetic Resin, 합성수지)이라고 하는 석유확학제품 원료를 수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마음먹은 그는 먼저 석유확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석유화학을 빠삭하게 잘 아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최소한 이론적으로는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달을 공부한 뒤 그는 공부한 이론적 실력을 바탕으로 하여 해외 바이어(Buyer)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그는 제일 먼저 합성수지(Synthetic Resin)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수출회사라는 영문 오퍼(Offer)를 작성한 후 세계 150여 개국을 대상으로 그 영문 오퍼를 온라인으로 발송하기 시작했다. 물론 어느 나라, 어떤 회사가 합성수지를 수입하는지 알 길이 없었던 그는 “Synthetic resin, chemical products”같은 단어를 쳐서 검색되는 모든 나라, 모든 회사에 매일 5,000통씩 온라인으로 오퍼(Offer)를 발송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온라인 발송은 돈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최선을 다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메일을 발송했다. 단순 계산으로 볼 때 하루에 5,000통씩을 발송하면 한 달에 20일만 일한다 해도 10만 통을 발송하는 셈이 된다. 그렇게 그는 “10만:1”의 확률에 도전하면서도, 로또복권 800만:1에 비하면 성공확률이 80배나 높은 확률이라고 자위했다. 그렇게 하루에 5천 통씩, 한 달에 10만 통을 온라인으로 수출오퍼를 보냈지만 1달이 지나고 2달이 지나도 단 한 통의 회신도 받지 못했다.
그런 그의 무모한 도전이 3개월 정도 계속되었을 때 홍콩의 한 바이어가 조건이 맞으면 수출오퍼에 있는 레진(Resin, 합성수지)을 1컨테이너(약20톤) 수입하겠다는 회신을 보내왔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수출결제는 L/C(신용장) 개설을 통한 결제가 상식이다. 하지만 그는 신용장을 받아도 그 신용장을 담보로 국내 구매를 할 수 있는 Local L/C(국내 신용장)를 개설해줄 은행을 찾을 수 없었다. 수출실적 0에다, L/C 개설용 담보를 제공할만한 재산이 하나도 없었음은 물론이고, 종업원이 사장인 자신과 경리를 보는 여직원 단 두 사람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차피 안될 일이니 큰소리나 쳐보자는 심정으로 홍콩 바이어에게 결제조건은 1달 전액 선불이라는 회신을 보냈다.
몇 천원, 몇 만원도 아니고 “35년 전 2,300만원(현재 가치로는 약 2억원)이 넘는 거금을 1달 전에 전액을 선불하라”는 결제조건은 누가 봐도 미친 자의 미친 결제조건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 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한국의 수출업체가 있으면 그 업체에서 수입하라”고 큰소리쳤다. 그는 그런 받아들일 수 없는 결제조건을 보낸 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약 일주일이 지난 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홍콩 바이어가 선불결제를 받아들이겠다는 통보를 해왔던 것이다.
홍콩바이어는 왜 그런 받아들일 수 없는 결제조건을 받아들였을까? 추측컨데 “이렇게 큰소리치고 나오는 데는 그만한 이유기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현금을 받았으니 그는 무난히 수출을 완료할 수 있었다. 그날 이후 바이어들로부터 1개월 전액 선불이라는 조건을 누가 받아들이겠느냐는 항의성 회신이 오면 이미 그런 조건으로 수입한 바이어가 있으니 결정은 당신의 몫이라며 더욱 큰소리를 쳤다. 그 결과 전액 1개월 선불 조건을 내걸고도 1년 후 110만 불이라는 기적같은 수출실적을 올리게 되었다. 이 세상 어딘가에는 자기처럼 미쳐도 제대로 미친 자가 10만 명 중 1명 정도는 있을 것이라는 가정에서 비롯된 그의 미친 도전은 그렇게 빛을 보았다.
그렇게 일어선 그는 다음과 같은 지론을 가지게 되었다. 첫째, 가지 말고 오게 하라. 모든 운동경기는 홈구장에서 할 때 승률이 높다. 둘째, 매달리지 말고, 매달리게 하라. 매달린 자는 오래 버틸 수 없다. 셋째, 빌지 말고, 빌게 하라. 비는 자는 모두 약자이다. 넷째, 굽히지 말고, 굽히게 하라. 굽히는 자는 종(從) 아니면 노예일 뿐이다.
이런 원칙은 국가일수록 더욱 지켜야 할 원칙이 아닐까? 미국이든, 그 어떤 강대국이든 그들이 한국을 놓치기 싫으면 그들이 제 발로 찾아와 한국의 조건을 받아들일 터이니 교역을 하자고 통사정을 할 것이다. 지금 미국은 혈맹이고 나발이고 미국에 돈을 갖다 바치지 않는 나라는 무조건 쓴맛을 보이겠다는 강경한 관세정책을 앞세우고 있다. 이런 현실은 우리가 애걸하는 약자로 남아 있는 한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미국이든 중국이든 상대국 대통령이 제 발로 찾아와 한국의 조건을 받아들일 터이니 교역을 하면서 잘 지내자고 통사정하도록 하는 대한민국을 만들 지도자는 없을까? 꿈도 꾸지 못할 일이라고요? 35년전, 무일푼 빈손으로 전액을 1개월 선불로 받고 110만불을 수출하는 것은 꿈꿀 수 있었던 일일까?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라는 그 생각이 바로 꿈꾸어서는 안 될 생각이 아닐까?
-손 영일 컬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