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오만, 전쟁의 반복…1969년의 경고는 왜 지금도 유효한가
반세기 전 한 록밴드가 남긴 이 문장은 특정 세대의 절망을 넘어, 오늘날 세계 질서를 향한 예언처럼 되살아난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권력은 여전히 오만하며, 경제는 소수의 손에 집중된 채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 우리는 과연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가.
1969년은 냉전이 극점에 달했던 해였다. 핵무기는 억제력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됐고, 베트남 전쟁은 이념의 이름으로 일상을 파괴했다. 제도와 권위는 미래를 약속했지만, 젊은 세대의 눈앞에는 폐허와 불안만이 펼쳐져 있었다. 그 시대에 울려 퍼진 노래는 “인류의 운명이 어리석은 자들의 손에 달려 있다”는 냉혹한 진단을 던졌다.
이 경고의 핵심은 전쟁 그 자체보다, 전쟁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에 있었다. 정치 권력은 공포를 통치의 도구로 삼았고, 경제 권력은 군수와 파괴의 시스템 위에서 이익을 축적했다. 죽음을 낳는 도구 위로 햇살이 비친다는 이미지는, 기술과 자본이 윤리 없이 결합할 때 얼마나 기괴한 풍경을 만드는지를 상징한다.
문제는 이 장면이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늘날에도 지도자들은 ‘안보’와 ‘성장’을 내세워 무력을 정당화하고, 금융과 산업 권력은 전쟁과 위기를 새로운 시장으로 환산한다. 대중은 선택권이 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결정 과정에서 배제된 채 결과만을 감내한다. 그 사이 미래는 점점 불확실해지고, 내일을 두려워하는 감정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적 정서가 된다.
이 노래가 반복해서 말하는 ‘혼돈’은 단순한 무질서가 아니다. 그것은 방향을 잃은 문명, 책임을 회피하는 권력, 그리고 침묵을 강요받는 사회가 남기는 집단적 흔적이다. 정치 권력과 경제 권력이 서로를 강화하는 구조 속에서, 전쟁은 예외가 아니라 반복되는 선택지가 된다.
반세기 전의 경고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은 불편하다. 그것은 우리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노래가 남긴 메시지는 절망만은 아니다. 혼돈을 묘비명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권력의 언어를 의심하고 전쟁의 논리를 해체하려는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운다.
역사는 언제나 “어리석은 자들의 손”에 맡겨질 위험을 안고 흘러간다. 그 위험을 줄이는 유일한 방법은, 전쟁을 운명처럼 받아들이지 않고 정치와 경제의 결합이 만들어내는 폐해를 끊임없이 드러내는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시대 역시 또 하나의 묘비명으로 기록될 것이다.
King Crimson – Epitaph
예언자들이 글을 남긴 벽은 금이 가고 있다
죽음의 도구들 위로 태양빛이 환히 비친다
모든 사람이 꿈과 악몽 속에서 갈기갈기 찢겨질 때
나는 본다, 인류의 운명이 어리석은 자들의 손에 달려 있음을
혼란이 나의 묘비명이 될 것이다
내가 죽을 때까지는, 나는 두려움 속에 살 것이다
나는 울 것이다, 네가 웃을 때까지
그리고 네가 울 때까지, 나는 울 것이다
지식은 죽음의 책 속에 쓰여 있다
진실은 말해지지 않은 말 속에 숨겨져 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세상에서
어리석은 자들의 손에 인류의 운명이 달려 있다
혼란이 나의 묘비명이 될 것이다
내가 죽을 때까지는, 나는 두려움 속에 살 것이다
나는 울 것이다, 네가 웃을 때까지
그리고 네가 울 때까지, 나는 울 것이다
운명의 바퀴는 멈추지 않고 돌아간다
희망은 절망 속에서 사라진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세상에서
나는 본다, 인류의 운명이 어리석은 자들의 손에 달려 있음을
혼란이 나의 묘비명이 될 것이다
내가 죽을 때까지는, 나는 두려움 속에 살 것이다
나는 울 것이다, 네가 웃을 때까지
그리고 네가 울 때까지, 나는 울 것이다
개인뿐 아니라 인류 전체가 혼돈 속에서 종말을 맞이 할 것이라고.
인류의 운명이 어리석은 자들의 손에 달려 있다 ‘정치 지도자들, 권력자들로 인해’
절망과 두려움이 끝없이 이어지는 인간의 운명
발표 시기: 1969년, King Crimson의 데뷔 앨범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에 수록된 곡.
가사가 담고 있는 메시지
1969년, 냉전의 그림자가 세상을 덮고 있던 시절. 젊은 세대는 핵전쟁의 공포와 베트남 전쟁의 참상을 매일같이 목격하며, 내일을 믿을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었다. 바로 그때 King Crimson은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이라는 데뷔 앨범을 내놓았고, 그 안에 담긴 곡 Epitaph은 시대의 불안을 집약한 듯한 장엄한 울림을 전했다.
가사의 시적 번역과 메시지
“The wall on which the prophets wrote is cracking at the seams”
“예언자들이 글을 남긴 벽은 금이 가고 무너져 내린다.”
→ 믿음과 제도가 더 이상 사람들을 지켜주지 못하는 시대의 붕괴.
“Upon the instruments of death the sunlight brightly gleams”
“죽음을 부르는 도구 위로 햇살이 서글프게 빛난다.”
→ 인류의 기술이 생명을 살리기보다 파괴하는 데 쓰이는 현실.
“Confusion will be my epitaph”
“혼돈이 나의 묘비명이 되리라.”
→ 개인과 사회 모두가 길을 잃고, 혼란 속에서 무너져가는 운명.
“I fear tomorrow I’ll be crying”
“내일 나는 눈물 속에 잠길까 두렵다.”
→ 미래에 대한 불안과 절망, 그리고 인간적 두려움의 고백.
이 곡은 단순히 한 시대의 산물이 아니라, 인류가 반복하는 불안과 혼돈의 순환을 노래한다. 예언과 제도가 무너지고, 죽음의 도구가 빛을 반사하며, 결국 남는 것은 혼돈이라는 묘비명뿐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 드러나는 감정은 단순한 절망이 아니라, 내일을 두려워하는 인간적인 목소리다.
마치 한 젊은이가 폐허 위에 서서, 무너진 벽과 반짝이는 무기를 바라보며 속삭이는 듯하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내일은 정말 존재하는가?”
오늘날의 울림
Epitaph은 냉전 시대의 불안을 담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전쟁, 환경 위기, 사회적 혼란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내일이 두렵다”는 감정을 공유한다. 이 곡은 단순한 시대의 기록이 아니라, 인류의 영원한 질문을 담은 묘비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