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놀이가 사라진 사회, 우리는 어떻게 몰입을 잃어버렸는가
놀이는 단지 어린이의 전유물이 아니다. 인간의 역사에서 ‘놀이’는 문화의 근원이자, 사유의 원천이었다.
Homo Ludens에서 요한 하위징아는 인간을 “놀이하는 존재(homo ludens)”라 불렀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언어, 예술, 법, 종교, 심지어 과학조차도 놀이의 정신에서 비롯되었다.
놀이란 규칙이 있으면서도 자유로운 공간, 현실이면서 동시에 상상인 공간이다.
그 안에서 인간은 몰입하고, 자아를 잊고, 세계와 하나가 된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놀이’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우리는 “생산성”이라는 이름으로 놀이를 쓸모없는 것으로 분류한다.
어린 시절 공터에서 흙장난을 하며 느꼈던 시간의 무한함은, 이제 스마트폰 알림과 업무 메시지에 잠식당했다.
자유로운 몰입 대신 ‘성과’가, 즉흥적 웃음 대신 ‘효율’이 자리 잡았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언제부터 ‘놀이를 포기하는 것’이 되었을까?
아이의 상상력은 무질서로, 장난은 비생산으로 치부된다.
결국, 우리는 놀이를 버리고 일에 몰두하지만, 역설적으로 진짜 ‘몰입’은 그때부터 사라진다.
몰입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 속에서 피어난다.
그리고 그 과정은 ‘놀이’라는 이름의 세계에만 존재한다.
놀이를 기억하는 순간은 단지 추억의 회상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복원하는 과정이다.
누군가에게는 비 오는 날 친구들과 하굣길을 달리던 장면일 수 있고,
다른 이에게는 손끝으로 종이비행기를 접던 집중의 순간일 수도 있다.
그때 우리는 ‘결과’가 아닌 ‘과정’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 몰입의 경험이 바로 인간의 창조성과 회복력을 키운다.
인지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이를 ‘플로우(flow)’라 불렀다.
어떤 행위에 완전히 빠져드는 상태, 즉 자아와 시간이 사라지는 몰입의 상태다.
이 몰입의 순간은 놀이라는 행위와 깊은 연관이 있다.
놀이할 때 우리는 결과를 의식하지 않는다.
바로 그 무목적성이 집중을 가능하게 한다.
놀이는 기억 속에서 반복된다.
과거의 놀이 경험이 지금의 창의적 사고, 예술적 영감, 문제 해결력으로 이어진다.
예술가, 과학자, 사상가 모두 이 ‘놀이의 기억’을 무의식 속에서 되살려낸다.
Albert Einstein이 “상상력은 지식보다 중요하다”고 말한 이유도
놀이의 본질이 바로 ‘자유로운 상상’이기 때문이다.
철학자들은 오래전부터 ‘놀이’를 인간 존재의 근원적 행위로 바라봤다.
니체는 “진정한 창조는 놀이하는 아이의 손에서 탄생한다”고 말했고,
하이데거는 놀이를 통해 인간이 ‘세계-내-존재’를 경험한다고 했다.
놀이의 핵심은 쓸모없음이다.
쓸모없음은 낭비가 아니라, 인간이 자기 존재를 느낄 수 있는 여백이다.
놀이는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또 다른 언어다.
논리나 이성이 아니라, 감각과 상상으로 사유하는 행위다.
그렇기에 놀이는 철학이다 — 삶의 의미를 묻는 가장 자유로운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이 ‘쓸모없음’을 견디지 못한다.
모든 것이 효율과 생산성으로 환원된다.
우리는 끊임없이 ‘해야 할 일’에 쫓기며, ‘하고 싶은 일’은 미루거나 포기한다.
놀이는 ‘시간 낭비’로 전락하고, 그 자리를 피로와 불안이 채운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쓸모없음’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쓸모없는 것을 할 수 있는 여유, 아무 의미 없는 행동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는 능력.
이것이 바로 인간의 창조적 본능이다.
철학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마지막으로 아무 쓸모없는 일을 한 게 언제인가?”
최근 세계 여러 도시에서는 ‘놀이’를 다시 사회적 가치로 복원하려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핀란드의 일부 학교에서는 ‘놀이 시간’을 수업의 일부로 편성했고,
일본과 유럽에서는 어른들을 위한 ‘플레이 워크숍’이 열리고 있다.
한국에서도 ‘놀이 철학’을 주제로 한 전시나 ‘몰입 디자인 연구’가 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다.
놀이를 통해 사람들은 협력, 창의, 몰입을 배운다.
기업들은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을 통해 직원들의 몰입도를 높이고,
교육 현장에서는 놀이 기반 학습이 아이들의 자율성과 상상력을 자극한다.
예술가와 철학자들 역시 놀이를 다시 ‘인간 회복의 언어’로 해석한다.
놀이하는 사회는 ‘여유로운 인간’을 만든다.
그 여유는 삶의 속도를 늦추고, 관계를 회복하며, 세계를 다시 느끼게 한다.
놀이가 사라진 사회는 결국 감각이 마비된 사회이며,
몰입을 잃은 사회는 결국 창조를 멈춘 사회다.
우리가 다시 ‘놀이’를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놀이의 감각은 인간 존재의 원형이다.
놀이 속에서 우리는 자유를 배우고, 몰입을 경험하며, 타인과 세계를 새롭게 만난다.
그것은 기억의 복원이며, 잃어버린 감정의 회복이다.
“놀이가 사라진 사회”는 인간이 자신의 가능성을 잊은 사회다.
그 사회에서 몰입은 피로로, 창조는 업무로, 감정은 데이터로 대체된다.
그러나 놀이의 철학은 묻는다.
“삶이란 결국, 놀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자의 몫이 아닐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일이나 성과가 아니라,
조금의 ‘쓸모없음’을 허락하는 용기다.
그때 비로소 인간은 다시 몰입하고, 창조하며, 살아있음을 느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