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88년 3월 3일 한국부인회 교육회관에서 열린 남녀고용평등법에 대한 간담회 사진 [사진=경향신문 자료사진]
30년 된 평등법, 왜 아직도 차별은 남아있을까?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된 지 30여 년이 지났다. 하지만 시민단체 직장갑질119 설문조사 결과는 씁쓸한 현실을 보여준다. 직장인 10명 중 6명은 승진이나 배치에서 남녀 간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특히 여성이 이를 체감하는 비율이 남성보다 30%포인트 가까이 높았다. 더 충격적인 것은 실제 현장에서 오고가는 말들이다. "원래 여자가 경리를 해야 한다." "옛날 같으면 여자 국장이나 부장 같은 것은 없었다." "여자는 내조를 잘해야지." 이런 발언들이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출산휴가를 다녀오자 "팀원에게 미안하지 않느냐"는 말을 듣고 퇴사를 종용받은 사례까지 있다.
차별을 차이라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차별'과 '차이'를 정확히 구분해야한다. 남성과 여성은 분명 다르다. 신체적 차이도 있고, 사회적으로 경험하는 것들도 다르다. 하지만 이런 '차이'가 직장에서의 불평등한 대우나 기회 박탈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여자라서 꼼꼼하니까 경리가 어울린다"는 말은 겉보기에는 칭찬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는 성별에 따라 업무를 제한하는 전형적인 성차별적 발상이다. "여자는 내조를 잘해야 한다"는 말 역시 여성의 역할을 가정으로 한정하려는 고정관념의 표출이다. 차이를 존중한다는 것은 개인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지, 성별이라는 프레임으로 개인을 재단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존중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능력과 적성, 희망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에서 시작되고, ‘남자니까, 여자니까’가 아니라 ‘그 사람이니까’에서 시작된다.
성인지 감수성, 갈등이 아닌 소통의 도구
이제는 폭넓게 성인지 감수성을 깨워야 할 때다. 성인지 감수성이란 성별 간 불균형에 대한 이해를 통해 일상 속 성차별적 요소를 감지해내는 민감성을 말한다. 나아가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할 대안을 찾아내는 능력까지 포함한다. 하지만 성인지 감수성은 '눈치 보며 말하기'가 아니다. 상대방이 불편해할 만한 발언을 했을 때, 불쾌함을 공격적으로 드러내는 것보다는 "왜 그렇게 이야기하시나요?" "그런 이야기를 듣다보니 불편하네요"라고 차분히 질문해보자.
"칭찬으로 한 말인데 차별이라고?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거야"라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건강한 표현법이다. 이 표현의 핵심은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느꼈는지를 건강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저는 그 말씀을 들었을 때 제 능력보다는 성별이 먼저 평가받는 느낌이 들어서 불편했어요. 좋은 의도로 말씀해 주셨다고 하시지만, 저에게는 그렇게 들렸어요"라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해보자. 결국은 소통이다. 이런 표현법으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대화로 이어갈 수 있다.
모두가 행복한 조직문화를 향해
결국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모두가 존중받고 행복한 조직문화다. 이는 한쪽의 편을 들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남성답게, 여성답게가 아닌 오직 사람답게’ 모든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다. 남성 중심적 조직문화에서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을 해소한다고 해서 남성이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양성이 보장되는 조직이 더 창의적이고 생산적이라는 것은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 육아휴직을 남성도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육아 부담이 여성에게만 집중되는 현상도 줄어든다. 승진과 배치에서 성별보다는 능력과 적성을 우선시하면, 모든 직원이 공정한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건강한 공론장을 만들다.
이런 변화를 위해서는 합리적 비판과 제도적 대안을 통해 누구나 억압받거나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건강한 공론의 장이 필요하다. 온라인 공간에서도 마찬가지다. 익명성이 보장된다고 해서 무책임한 발언을 일삼기보다는, 서로 다른 경험과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진솔하게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성차별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종종 '남 vs 여'의 구도로 치달아간다. 하지만 이는 본질을 흐리는 일이다. 진짜 문제는 차별적 구조와 관행이지, 특정 성별이 아니다. 차이는 인정하되 차별은 거부하는 것. 다름을 존중하는 것에서 진정한 평등이 시작되는 것. 이것이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조직문화이자, 더 나은 사회의 모습이다. 37년 전 법이 평등의 문을 열었다면, 이제는 우리의 말과 행동이 그 문을 넓히고 단단히 고정해야 할 때다. 차이는 인정하되 차별은 거부하는 일, 그것이 우리가 더 나은 사회로 가는 첫걸음이다.


















